인간 유전자 지도 완성은 달착륙에 버금갈 정도의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에 밝혀진 새로운 사실, 앞으로의 전망 등을 정리해 보자.
◇인간의 유전자 숫자=이번에 밝혀진 인간 유전자 숫자는 이미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 식물 '애기장대'(아라비돕시스 탈리아나)의 2만5천개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애벌레인 C. 엘레간스(1만9천개)나 초파리(1만3천 개)와 비교해도 2~3배에 불과하다.
이때문에 일부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유전자 수는 인간의 복잡성을 형성하는 토대일 뿐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했다. 인간의 유전자는 벌레보다 많은 단백질을 형성하며, 인간 단백질은 하등동물의 것보다 다양한 기능을 가짐으로써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뚜렷한 차별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외 드러난 사실=HGP 연구팀은 유전자 변이가 여성 보다 남성에서 2배 정도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남성의 활발한 유전자 변이는 인류 진화를 촉진했다고 평가될 수도 있고, 오히려 많은 질병 유발에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인간 DNA의 1~1.5%만이 단백질 생산 암호를 가진 것으로도 나타났다.
당초 예상치 3~5%보다 적은 것. 유전자는 세포의 구조·기능에 반드시 필요한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세포에게 명령한다.
광활한 지역에 도시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처럼, 유전자도 DNA 사슬에 다발의 형태들로 존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들 다발은 예상 보다 더 뚜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유전자 중 200개는 박테리아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판단됐다.
박테리아는 인간의 조상인 초기 척추동물에 그같은 유전자를 삽입했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큰 충격이 될 것이라고 한 과학자는 말했다.
◇킬러 염색체 있다=HGP에 참여 중인 영국 과학자들이 치명적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이 가장 많이 집중돼 있는 이른바 '킬러 염색체'들을 발견했다고,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 신문이 11일 보도했다.
23쌍의 인간 염색체 중 3쌍이 유전적 질병과 가장 큰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 1번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들은 알츠하이머병과 전립선염, 6번 염색체 유전자는 지능과 각각 관련돼 있으며, 특히 X염색체는 많은 질병들과 연관돼 있고, 그 질병 중 하나가 어린이와 젊은 성인들의 근육발달을 막는 질병인 뒤센형 근육위축증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 연구결과는 전립선암과 알츠하이머병 등 염색체 관련 질병들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활용에 대한 기대=유전자에 대한 분석이 진전되면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를 규명, 그 치료에 혁신적인 발전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자들은 "게놈 지도 작성이 끝나면 약물 남용자나 정신 질환자에 대한 치료제 개발도 가능하다"며,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발견하면 반사회적 행동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약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인별로 서로 다른 유전자 변이를 파악하면 그 개별 증상에 맞는 맞춤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다는 것.
NIH(미 국립보건원)의 정신의학연구소 소속인 한국인 진혜민(47) 박사는 "인체 유전자가 완전히 해독돼 약 400개 정도의 질병유발 유전자가 밝혀짐으로써, 앞으로 의학 및 생물학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유전자의 중요한 정보는 이미 밝혀졌기 때문에 나머지 2%에 대한 해독을 완성한다는 것은 완벽을 기한다는 것 이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이번 성과를 평가했다.
◇앞으로의 전망·과제=진 박사는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이들 유전자의 생물학적 기능과 질병 유전자들의 질병 유발 메커니즘을 규명해 질병을 진단·치료하고 나아가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11일 인간게놈에 대한 지속적인 분석 작업으로 앞으로 몇년 내에 수백개의 질병유발 유전자가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예상했다. 유전자의 오류가 어떻게 질병을 유발하는지를 연구함으로써 더 효과적인 의약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게 됐으며, 질병유전자를 찾기 위해 게놈을 컴퓨터로 검색한 결과 이미 40개의 질병유전자가 밝혀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LA의 캘리포니아대 펠토넨 박사, 존스 홉킨스대 맥커식 박사 등은 "인간 게놈지도가 완성됨으로써 생의학 연구계는 연구방법과 전략에서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자별 맞춤 치료법이나 정상적인 부분은 손상시키지 않고 질환 부위만 선별적으로 공격하는 약품, 출생 때 앞으로 걸릴 가능성이 많은 질병을 예상하고 이를 예방하는 것 등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허치슨 암센터의 트라스크 박사는 "암은 분명히 게놈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라며 "개인별로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 문제를 해결하는 맞춤 치료법 개발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용화 준비=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됨에 따라 이를 상용화하려는 생명공학 회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 특허청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약 3만건의 새로운 유기화학 및 생명공학 관련 특허가 신청됐으며, 그 중 대다수는 생명공학 회사들에게 '금밭'으로 간주되는 유전자 관련 특허였다.
그러나 생명공학 업계가 게놈 지도 완성을 이용해 현금을 손에 쥐기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번 성과를 신약 개발·치료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유전자 암호의 해독 때까지, 어쩌면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아메리칸 대학 생물학과의 쉐프 부교수는 "DNA 염기 배열과 유전자들을 해석하는데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화이트헤드 생명의학연구소 랜더 교수는 "게놈 프로젝트는 21세기 생물학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워밍업 단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벌써 제약업계의 붕괴를 점치고 있기도 하다.
인간게놈 연구의 파장이 생명공학 업체나 제약업체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커 결국 제약산업 전체가 부도사태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악용 우려=유전자 정보가 보험·고용 등에서 차별의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사생활 보호이며, 유전정보를 악용할 경우 새로운 하층민이 생겨날 수 있는 것으로 우려됐다.
외신종합=모현철기자 mohc@imaeil.com
---인간게놈 지도 작성에는 한국인 과학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HGP(인간게놈 프로젝트) 소속. 주요 참여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CalTech) 생물학과 김웅진(43) 교수, 울산의대 송규영 교수, 가톨릭의대 김성주 박사, 미국 NIH(국립보건원) 산하 생명공학정보센터(NCBI) 장원희 박사 등이다.
칼텍 게놈(인간유전자정보) 연구소장인 김웅진 교수는 지난 10년 간 미·영·일·캐나다·스웨덴 공동 연구팀이 22번 염색체의 DNA 염기서열 지도를 완성하는데 한국인 과학자로는 혼자 참여,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염색체는 결함이 생기면 광범한 질병과 기능장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들이 가득 차 있다.
김 박사는 작년 4월 서울대 교수들과 함께 생명공학 벤처회사인 '팬제노믹스'를 설립, 간경화 치료제의 동물 임상시험을 마치고 1∼2년 안에 상품화할 계획이다.
가톨릭의대 의과학연구소의 김성주 박사와 울산의대 송규영 교수는 오는 15일 발행될 '네이처' 인간게놈 지도 특집호에 12번 염색체의 상세 지도 논문을 발표했다.
NIH 산하 생명공학정보센터 장원희 박사가 참여한 연구팀은 15일자 네이처 인간 게놈지도 특집호에 중요논문 1편, 일반논문 1편 등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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