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 일로 예방대책 막연

입력 2001-02-06 14:58:00

광우병 우려가 유럽을 넘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유럽에서 생산된 소 핏가루나 감염된 사람 혈액이 세계로 수출됐다는 보도까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동물성 음식물 찌꺼기를 먹인 소가 확인돼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대응에선 허술한 곳이 잇따라 발견돼 소비자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광우병과 인간 광우병=광우병은 학문적으로 BSE라 불린다. 한자 표기는 '우 해면양 뇌증'. 뇌가 스펀지(해면.海綿) 같이 구멍이 숭숭 뚫린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소는 몸을 떨고 중심을 잃는다. 급기야는 뇌가 급속히 파괴돼 죽는다.

사람에게도 비슷한 병이 있어 왔다. 명칭은 CJD. 1920년과 다음해에 이 병을 규명한 독일 신경과 전문의 이름을 따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라 부른 것이다. 사람의 CJD는 우울증.시각장애.비틀거림 등 증세를 나타내고, 언어장애도 수반한다. 병이 진행되면 역시 뇌가 스펀지처럼 변하고 심한 치매증세를 보이다가 사망한다. 국내에서도 여러명 발견된 바 있지만, 이것 역시 아직은 치료 방법이 없다. 잠복기간이 수십년이나 돼 보통 50대 후반 이후, 빨라도 40대 후반은 돼야 증세가 나타나 1년 이내에 사망한다.

이런 가운데 소의 광우병이 문제된 것은, 사람에게 옮기고 그런 뒤에는 종래의 사람 CJD와 달리 연령에 관계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10대가 걸리기도 했다. 이런 인간광우병은 '변종'을 의미하는 v자를 붙여 'vCJD'라 구분해 부른다.

◇전염 경로와 대책=소 광우병과 사람 광우병(vCJD)은 모두 '프리온'이라는 특별한 단백질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프리온은 정상상태에서는 뇌세포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비정상적인 구조로 바뀌면 신경세포를 죽이면서 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돼 있다.

하지만 세계 의학계는 그런 프리온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어떻게 예방할지 등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프리온이 광우병을 유발한다거나,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먹으면 인간 광우병에 걸리는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광우병 소에서 나온 프리온이 든 고기를 섭취하면 vCJD에 걸린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지만, 헌혈 등을 통하면 사람 사이에서도 전염될 수 있으리라는 가설도 있다.

현재 단계에서 의학계는 소.양 등의 고기.뼈가 들어간 '동물성 사료'를 광우병의 유력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EU 역시 동물성 사료를 범인으로 지목하기까지는 오랜 논란을 겪었다.

◇사안의 발단=광우병은 1985년 영국의 수의사들이 처음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 1986년에야 질병 이름이 BSE로 진단됐고, 88년 7월엔 영국 정부가 감염된 소 전부를 도살하겠다고 발표했다. 89년 6월에는 소의 모든 내장을 식용금지 조치했다.영국 이외 지역에서는 1990년 1월 오만에서 처음 감염사례가 발견된 것을 필두로, 곧 이어 스위스.프랑스.덴마크 등에서도 발견됐다. 이에따라 호주가 가장 먼저 영국산 소 수입을 88년 7월 금지했으며, 1990년에는 다른 나라들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문제는 소에게로 국한됐었다. 인간에게도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던 것. 사람 감염 가능성을 영국 정부가 처음 인정한 것은 1996년 3월이었다. 이때부터 상황은 전혀 다르게 악화됐다. 이때는 벌써 영국의 감염 소 숫자가 15만 마리에 달했을 때였다.

영국은 당연히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았고, 재정 압박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은 1996년 한해에만 광우병 파동으로 16억 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측도 96.97년 2년 사이에만 41억5천만 달러의 처리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영국은 98년 9월 말까지 260만 마리의 소를 도살했다.

이때 영국 과학자들은 광우병이 올해 말까지는 소멸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작년에 인간 광우병 환자들이 유럽 각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자 사태는 이제 겉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 들었다.

◇근래의 상황=광우병이 처음 확인됐던 1986년 이후 최근(지난달 28일)까지 유럽에서 확인된 소 광우병 발생건수는 영국 18만 마리, 포르투갈 503 마리, 아일랜드 499 마리, 스위스 366마리, 프랑스 191 마리, 독일.벨기에 각 19마리, 화란 6마리, 스페인.덴마크 각 2마리, 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이탈리아 각 1마리 등이다. 스웨덴.핀란드 외의 모든 EU 나라들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작년 10월 프랑스에서 광우병 사태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대부분의 발병 사실이 묻힌채 넘어갈 뻔 했다는 것이다. 발견 숫자가 많아진 것도 검사 폭을 확대.강화한 이후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실제 얼마나 감염돼 있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사람 환자는 영국에서만 지난 5년간 매년 20~30%씩 증가했으며, 지금까지 모두 69명이 사망하고 7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영국 전문가들은 이 병이 주로 어린이들에게 발병한다며, 앞으로 40년간 최대 13만여명의 새 환자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년 10월 프랑스 사태 이후 불과 4개월 동안 EU가 육골분 폐기, 광우병 소 폐기 등에 투입한 비용만도 1조원(10억 유로)가 넘는다. 올해 13억 유로, 2005년까지 70억유로가 추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소 처리에 들어간 직접 비용일 뿐, 축산 관련산업 타격 등을 포함하면 광우병이 유발할 직간접 피해는 수십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의 비화=소고기만이 문제가 아니라, 소 핏가루가 별도로 유통된 사실이 밝혀져 한국 등에서까지 위기감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사람 환자의 혈액이 또다른 경로로 세계로 유통됐다는 보도까지 겹쳤다. 영국의 가디언 신문이 감염된 영국인 3명의 혈액이 과거 전세계 11개국에 수출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5일 보도한 것. 신문은 1996~2000년 사이 생산된 이 혈액으로 영국과 전세계 혈우병 환자 수천명이 치료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6일엔 소 같은 동물의 뇌.고환.기관(氣管).선(腺) 등의 성분이 함유된 영양보충제는 과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느냐는 문제가 미국 메릴랜드의 한 의사에 의해 제기됐다는 외신까지 나왔다. 영양보충제에는 약초가 아닌 동물 신체조직이 성분으로 들어 있는 것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유럽에서 수입된 것임이 밝혀졌다는 것.이 지적이 있은 뒤 미국 FDA(식품의약청)은 광우병 차단망에 혹시 허점이 없는지 다시 점검에 나섰다. FDA는 최근 미국 내 일부 백신 제조업자들이 동물 추출 성분들을 유럽으로부터 불법 수입한 사실을 적발한 바도 있다.

이처럼 곳곳에서 허점들이 지적되자, 이번에는 또다른 어떤 문제가 어디서 불거져 나올지 세계는 지금 불안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한국이 유의할 점=EU의 광우병 대책에서 나타난 결정적 오류는 소비자 안전을 도외시하고 축산농가만 보호하려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원인이나 감염 경로 등이 불분명한데도 무턱대 놓고 "괜찮다"고 무마하려 했던 것이다.

각국 정부는 처음에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이되지 않는다고 했다가, 치명적인 것으로 드러난 뒤에는 소의 특정부위는 안전하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도 모두 타당성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소비자들은 정부 발표조차 안믿게 돼 버렸다. 이런 상황이 소고기 불안을 부채질해 축산업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한국은 이런 전철을 되밟지 말아야 축산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환란 중에도 유럽 각국이 세계로부터 주목받은 철저한 축산업 유통 추적 시스템도 빨리 갖추려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U는 도축장.슈퍼마켓 등에서 문제 소고기가 발견되면 거 소의 출생.사육.도축.수입.판매지 등을 즉각 파악해 검역.수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유통과정을 추적할 시스템이 없어 일부 문제만 발생해도 모든 축산제품이 불신받아 자칫 EU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박종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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