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잠시 눈을 밖으로 돌려 세계화에 부응한 국가관리체제를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은뒤 3년이 지난 오늘,국가경쟁력을 회복하고 국민지지를 받을 수 있는 관리체제가 아직도 미비하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세계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는 두가지 큰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 범위와 밀도가 매우 방대하면서도 집약되고 있다.
예컨대 자본과 정보기술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하여 세계의 어느 곳이든 파고들고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중앙은행)가 금리를 0.5% 내린다면 한국내에서도 주가와 환율이 큰 폭으로 달라지고 있다.
현재 미국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있고 국제원유가가 다시 상승하고 있는데 이 결과 우리의 수출은 타격을 받고 국내 경기도 악화되고 있다. 둘째, 세계화의 속도와 강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은행과 다국적 기업의 직원들이 컴퓨터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 수백만 달러와 막대한 양의 정보가 전달되고, 우리는 뉴욕에서 일어나는 증권시세도 안방에서 인터넷을 통해 즉각 볼 수 있다.
이와같이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국가와 지역, 심지어 개인들간에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화의 급류에서 소외되고 있는 세력들은 이 빈부의 격차와 환경파괴 등에 대하여 강한 반발을 나타내고 있다.
1999년말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회의나 최근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에서 각종 비정부조직 대표들이 행한 시위에서 우리는 세계화에 대한 항의운동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국경없는 경제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완수해서 국가경쟁력을 되살려야 한다. 바로 이러한 과업을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 세계화의 범위와 속도가 확대되고 빨라질때 주권국가의 능력은 다소 약화되지만 그 결과 파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는 점차 세계화하고 있지만 정치는 여전히 당쟁화하고 있는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우리는 국제자본시장에서 신인도를 얻어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실시해야 한다. 정파들간의 권력투쟁은 이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과 정파들간에 생기는 갈등을 원만하게 해소하려면 어떤 형태로든지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노사간의 갈등과 부실기업에 대하여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문제도 국민적 합의를 결집해서 해결해야 한다.
이와같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결하는 쟁점은 정부가 혼자서 처리할 수 없으므로 기업, 노동 및 시민사회가 함께 의견을 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 일을 이행하는 관리체제(governance)가 투명성과 책임성을 발휘하면서 제도화될 때 그에 대한 신인도와 지지가 확보된다. 그렇지 못하고 관리체제가 지도력 부족과 부패로 인해 불신당하면 정치불안이 가중되고 경제도 더욱 더 어렵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필리핀,태국 및 인도네시아에서 이미 뚜렷하게 표출되고 있다.
한편 관리체제가 효율성과 정당성을 동시에 과시하면서 잘 작동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구조조정이 성공하여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유럽에서는 네덜란드를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정부가 노동, 기업 및 시민사회와 더불어 공공선과 국가이익을 위해 대타협을 이루고 서로 협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문제해결의 정치가 정착되어야만 국가경쟁력이 발전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세계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관리의 정치가 요망되고 있다.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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