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성난 국민이 또 부패한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아냈다. 그리고는 앳된 얼굴의 50대 중반 여성을 새 대통령으로 받들었다. 며칠 전에는 페루 검찰이 부패 스캔들로 물러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을 국고남용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어제의 외신은 또 부패 혐의가 확인된 인도네시아의 와히드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전해 왔다. 나라들마다 부패 척결의 의지를 과시하면서, 투명하고 밝은 21세기의 새 희망을 가꿔가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세계인 것이다.
동토의 땅이었던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구상의 마지막 독재자로 알려져 온 김정일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전면적인 신사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중국의 상하이(上海)모델을 받아들여 북한을 개혁해 갈 것이라는 의지도 강하게 내비쳤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혼돈이고 뒤죽박죽이다. 어느 나라보다 일찍부터 변화와 개혁을 외치고 주창해 왔지만, 뭐 하나 제대로 돼가는 일이 없다. 과거의 패러다임과 낡은 관행들은 좀처럼 청산되지 않고 있다. 부도덕한 기득권층은 노골적으로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말로만 무성한 개혁 놀음에 국민은 피곤해 하고 나라의 내일은 실종되어 가고 있다.
먼저 정치권이다. 안기부 돈 횡령 의혹이 불거진 것이 벌써 한 달 전인데, 진실을 가리는 일조차 요원해 보인다. 의혹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전직 사무총장이란 사람은 전혀 조사에 응할 태세가 아니고, 공권력도 맥없이 후퇴를 선언하였다. 전직 대통령도 재벌들이 뭉칫돈을 들고 줄을 섰던 시절인데, 굳이 안기부돈을 쓸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여유있게 받아쳤다. 안기부돈을 빼쓴 것이 아니라, 안기부를 단지 돈세탁소로 활용했다는 얘기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국민세금을 횡령한 것이든 재벌들에게서 챙긴 검은 돈이든, 천억원대의 부정한 돈이 선거판에 뿌려진 것이 사실로 드러났는데, 그 전모조차 국민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못된 짓하고도 버티고, 도둑질하고도 뭉개고, 말로는 늘 개혁을 외치는 정치권은 오히려 개혁의 예외지대인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에 법이 있는 건지, 국민의 혈세를 지키고 죄를 다스리는 검찰은 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 사회에 정의라는 것이 살아 있는 건지, 우리 정치에 최소한의 도덕이라도 있는 건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제대로 된 국가이기나 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경제도 다르지 않다. 낡은 재벌체제와 부당한 내부자거래 등이 경제위기의 주범이니, 정부가 책임지고 개혁해 내겠다고 큰소리친 것이 벌써 3년짼데, 변한 건 별로 없다. 정부는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다가도 조금 어렵다 싶으면 스스로 개혁을 밟는다. 일관성없이 구태를 눈감아 주기 일쑤며, 오히려 과거식의 가족경영과 내부자거래를 종용하기까지 했다. 현대건설도 그런 식으로 살렸고, 지금까지 20조원이 넘는 공적 자금을 집어삼킨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회장도 책임 하나 지지 않은 채 해외에 머물고 있다. 이러니 총력을 다해도 될까말까한 재벌 개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제2의 IMF 위기 조짐도 당연한 귀결이라 해야 할 것이다.
낡은 정치, 낡은 경제, 낡은 사고, 낡은 우리 자신을 혁신해, 이 나라를 혼돈과 뒤죽박죽에서 구해 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다. 세계의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타락하고 부패한 3류 국가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말이 아닌 일관된 실천, 예외지대가 없는 전면적 실천이야말로 유일한 처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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