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데스크-'궁예'황제인가, 왕인가

입력 2001-01-31 08:00:00

TV드라마 '태조 왕건'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교과서를 통해 피상적으로만 접해오던 후삼국 역사가 사실감이 가미된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되살아난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드라마 왕건은 궁예와 견훤에 대해 황제라는 호칭을 쓰고 있어 조금은 생경스런 느낌을 주고 있다.우리는 학교에서 중국은 황제, 우리나라는 왕이란 호칭을 사용했다고 배워왔다. 그러면 '황제 궁예', '황제 견훤'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드라마 제작진은 홈페이지를 통해 "고려를 세운 왕건은 스스로 황제로 칭하고 자신을 짐이라 불렀다"고 단정적으로 밝히고 있다.

◈'태조 왕건' 신드롬

여기서 "스스로 황제로 칭했다"는 말의 근거는 무얼까. 이와 관련 드라마 작가는 "고려사 등에 고려 태조 왕건은 물론 궁예와 견훤 모두 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기록돼있기 때문에 당시 황제라는 호칭이 사용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짐은 황제가 스스로를 칭할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계의 견해는 대체적으로 다르다. 짐이라는 말은 황제는 물론 독립국가의 왕도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라는 것.국사편찬위원회 고려사 전공학자들은 당시 우리 임금들을 대왕이라고 부른 적은 있어도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직접적 사료는 없다고 말한다.다만 고려 4대 광종때 개경을 황도(皇都)로 표현한 기록이 고려사절요에 한번 나온다며 황도는 황제가 있는 도성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황제라고 불렀을 수도 있으나 확대해석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민족 자주성 보여주는 상징

우리나라의 자주성은 고려후기 몽고의 침입이전까지 유지됐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가 중국 대륙에서 당이 멸망한 후 분열과 혼란을 겪는 힘의 공백기여서 간섭할 세력이 없었던 때문. 이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한반도의 후삼국과 고려가 구체적으로 황제라는 표현을 않아도 중국에 대해 자주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있다. 또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시기가 적지않다는 것도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은 반증으로 해석된다. 중국에 대한 본격적 사대(事大)는 조선조 이후의 일이다.

후삼국시대 이땅의 영웅들이 황제라 칭했건 아니건 그것은 역사기록의 표현상 차이일 뿐이다. 따라서 황제칭호는 우리민족의 자주성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상징이고 작품에 반영된 작가의 역사인식으로 보면 타당할 것 같다.드라마 왕건은 까마득히 먼 1천년전 우리의 삶을 생생히 재현, 국민들에게 잊혀졌던 역사의 고리를 이어주고 있다. 특히 고증에 필요한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어려움을 딛고 드라마적 재미와 함께 역사적 실체에 접근하는 성과를 동시에 거두고 있다.

◈보편적 역사 인식 바탕돼야

드라마는 한치의 논리적 비약도 허용되지 않는 학술논문은 아니다. 그러나 TV사극은 시청자 계층이 초등학교 어린이들에서부터 나이많은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관제는 물론 복식, 생활도구, 가옥 등 소도구와 세트 하나하나가 그대로 시청자들의 역사 지식으로 간직될 가능 성이 높다. 역사드라마의 고증이 중요한 것은 이때문이다.

왕건을 계기로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잇따라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마다 시청자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드라마상의 용어가 달라 혼란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본다. 보편타당성이 인정되는 용어에 작가 특유의 역사인식을 담을 수는 없었을까. 역작 왕건을 보면서 느끼는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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