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번역서가 차지한 비율은 17.9%. 프랑스의 경우 17.6% 이탈리아와 스페인 25~26%, 스웨덴은 무려 60%이다. 이렇듯 세계 주요 국가의 번역서 비중은 통상 10~20%이상일 정도로 만만찮다. 출판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번역의 기원이 언제부터이며 어떻게 변화돼왔는가를 다룬 책 '번역사 산책'(쓰지 유미 지음, 이희재 옮김, 궁리 펴냄, 300쪽, 1만원)이 나왔다. 이 책 역시 번역서이며 역자는 다른 책들을 번역할 때와는 달리 남다른 느낌을 가졌을 법하다.
흔히 창조성이라는 측면에서 무시되기 쉬운 '번역'은 흥미로운 변천과정을 지나왔다.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번역서는 선봉장의 역할을 했으며, 때로는 창조성이 지나쳐 논란을 빚기도 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동.서양의 번역 역사를 다루면서 유명.무명의 번역가들이 간직했던 열정도 소개된다.
번역의 기원은 세계 최초의 기록언어 문화를 세운 메소포타미아의 영웅서사시 '길가메시'로 꼽힌다. '길가메시'는 이 문명권에 속한 모든 언어에서 발견될 정도로 인기있는 소재였다. 이후 그리스 문화가 헬레니즘 문화로 계승되거나 아랍어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번역 활동은 왕성해지기 시작한다. 유럽과 아랍간의 전쟁으로 아랍권에 속하게 된 도시 코르도바는 바그다드와 함께 번역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며 이후 아랍세력이 물러나면서 그 지적 유산은 톨레도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된다.
16세기 프랑스에 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번역은 제 세상을 만나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번역에 뛰어들고 직업적 번역가도 나타나게 된다. 특기할 만한 점은 번역을 통해 이 시기에 프랑스어의 틀이 갖춰지고 이는 프랑스가 근대 국민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는 점이다. 번역의 발달은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낳아 루이14세 시대, 뜨거운 번역 논쟁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보들레르, 앙드레 지드, 발레리 라르보,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등 번역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들과 가브리엘 에밀리 뒤 샤틀레, 클레망스 루아이에, 드니즈 클레루앵 등 여성 번역가들의 외국 작품에 대한 시각과 열정도 전해준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