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 포럼 엇갈린 주장

입력 2001-01-29 00:00:00

스위스에서 열리고 있는 다보스 포럼에서는 아시아적 가치, 미국적 가치, 아시아의 무역 블록화 움직임, 이를 극복하기 위한 WTO(세계무역기구)의 뉴라운드 개척 등 한국의 미래와도 깊이 관련된 여러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중간 점검을 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적 가치, 아시아적 가치= 외환위기와 세계화가 아시아에 미친 영향과 역할에 대해서는 서로다른 다양한 시각이 제시됐다.

군국주의적 발언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는 현지시간 지난 26일 발언을 통해 미국을 맹비난했다. 이틀째 회의에서 발언권을 얻은 그는 "미국의 기준이 세계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면서, "미국은 자신들의 가치를 다른 국가들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이 IMF(국제통화기금)를 이용해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를 황폐화 시켰다"고 비난했다.

개막 사흘째인 27일 열린 '세계화가 아시아에 미친 영향'이라는 토론회에서 수파차이 파닛차팍 전 태국 부총리는 이와 달리 "외환위기와 세계화로 인해 아시아에서 일부 진전된 것도 있다"면서 국민들의 정치 참여와 정치체제 개방을 긍정적 부분으로 지목했다. 내년 9월부터 WTO 사무총장 직을 맡게 된 그는 또 "앞으로도 아시아적 가치가 그렇게 많은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회의에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외환위기에 이은 정보기술 혁명, 세계화 등으로 인해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에도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교 문화권인 한국.중국.일본.대만.베트남.태국 등으로 좁혀 본다면 '아시아적 가치'는 가족.동료애.성실.근면.절약 등으로 상징돼 왔으나, 이제 그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는 가족.친구 등 인간관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며, 가장(家長)의 전통적 권위조차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가 변하더라도 가족.동료애 만큼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아시아 경제 블록화 이견= 아시아의 경제 블록화와 관련, 27일 열린 몇몇 회의에서 일본.태국.필리핀 등의 정부 관계자들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 3(한.중.일)을 포괄하는 자유무역 협정의 당위성을 적극 제기했다.

이날 뉴라운드 출범 등 다자간 무역체제 관련 토론회에서 노가미 요시지 일본 외무성 심의관은 지역 무역협정은 세계무역의 자유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구측 우려에 대해 "자유무역 협정이 다자무역 체제의 우산 아래 있는 한 무역 자유화의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수파차이 파닛차팍 차기 WTO 사무총장 내정자는 같은 날 열린 또다른 한 회의에서 "아시아는 유일하게 경제통합이 이뤄지지 않은 대륙"이라며, 아시아의 3대 경제 대국인 한.중.일 뿐 아니라 호주.뉴질랜드까지 포괄하는 범지역 경제통합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렇게 해야 금융위기 같은 것을 조기에 감지하고 상호협력을 통해 공동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도 EU.NAFTA(북미 자유무역협정).MERCOSUR(중남미 공동시장) 등 자유무역 협정을 열거하면서, 동아시아 경제블록이 형성되면 경제성장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권의 경제 블록화 노력들에 대해 유럽 등은 크게 경계하고 있으며,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도 마이크 무어 WTO 사무총장은 "시애틀 각료회의 실패 이후 다자간 무역체제 전망이 불확실 해지면서 지역 블록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파스칼 라미 EU(유럽연 합) 집행위원도 비슷한 우려를 표시했다.

◇뉴라운드 전망= 뉴라운드 출범에 관한 집중적인 토론이 27일 벌어졌으나,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입장 차이만 재확인됐다. WTO는 미국 부시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뉴라운드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모색해 왔다.

EU의 라미 집행위원은 △세계경제의 성장 둔화 △경제 블록화 추세 △무역 분쟁과 관련한 WTO의 과도한 역할 부담 등으로 다자 무역체제의 장래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다자무역 규범을 개정해야 하며, 뉴라운드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무어 WTO 사무총장도 적극적 협상을 촉구했다.

이에대해 일본 외무성 노가미 심의관은 개도국 주장을 수용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을 했으나, 미국의 존 케리 상원의원(민주)은 클린턴의 민주당 행정부 때 주장을 되풀이, 환경.노동 등의 연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개도국과 아프리카 입장을 대변한 남아공 상공장관은 "현 세계 경제에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심화된 불균형 상태를 먼저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시정하는 노력이 전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는 개도국을 보호하는 무역 규범이 필요하다"면서, 개도국 이익이 반영되는 것을 전제로 해야 뉴라운드가 출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신종합=박종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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