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포커스-연기금 1조2천억원 손실

입력 2001-01-26 00:00:00

온 국민의 노후생활 밑천인 국민연기금이 이른바 공공자금으로 빠져나가 있는 동안 무려 1조2천700억여원의 천문학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동안 국민연기금의 공공자금 전용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음이 명백히 입증된 셈이다.

이로써 국민연기금의 공자금 전용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온 정부로서도 국민연기금 운용 정책의 전반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 개개인이 노후생활 안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기 위해 한푼 두푼 적립해 모아진 것이 바로 국민연기금인 만큼 국민정서에서 표출되는 상실감은 실제 손실 규모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민 연금시대의 개막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온 정부로서는 국민연기금을 쌈짓돈처럼 꺼내 쓰다가 거꾸로 손실을 입힌 꼴이어서 따가운 여론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국민연기금을 공자금으로 끌어다 쓰기 시작한 것은 94년부터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면서 SOC(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 재원에 목말랐던 정부는 당시 4조5천억원 가량 조성돼 있던 국민연기금 등에 눈을 돌리게 됐고 그 결과로 93년 제정된 것이 바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이다.

이 법의 골자는 국민연기금, 공무원연금 등 이른바 공공기금의 여유 자금을 공공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끌어 모아 SOC 등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94년부터 작년까지 무려 42조3천673억원(국채 3조원 포함)의 국민연기금이 공공자금으로 흘러들어갔고, 예탁기간 5년이 만료되면서 99년과 작년에 5조1천835억원이 환수됐으나 아직 37조1천838억원이 공자금에 잠겨 있다.

정부는 그동안 공자금에 투입된 국민연기금에 대해 국민주택채권 1종(5년만기)에 준하는 이자율을 적용, 충분한 수익률을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으나 그같은 논리가 억지에 불과했음이 이번에 명확히 드러났다.

국민연기금을 공자금에 투입하지 않고 채권 등 민간부문에서 운용했을 경우 공자금 예탁 수익률에 비해 연평균 1.66%포인트 정도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특히 공자금 운용을 맡고 있는 재경부는 공자금과 국민연기금의 수익률 차이로 국민연기금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97년 공자금 예탁 규정에 손실분 보전 조항을 마련해 놓고도 지금까지 한 푼도 보전해 주지 않아 도덕성 시비를 피하기 어려울것으로 보인다.

한편 복지부가 지난해 재경부와 국민연기금 운용 문제를 협의하면서 올해 10조원 어치의 국채 매입을 약속한 것은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할 소지가 많다.

그것은 공공자금관리기금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공자금 의무 예탁 대상에서 국민연기금이 제외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는 공자금 공백을 국채 매입의 형태로 보전해주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이미 작년에 공자금에 들어갔던 국민연기금 4조2천735억원이 5년 만기로 환수돼 공자금 운용에 주름이 생기자 3조원 어치의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재경부의 숨통을 틔어준 전례가 있다.

물론 국채 매입의 수익률은 과거 공자금 예탁과 다르고 만기 이전에도 시장유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정부 필요에 따라 국민연기금을 마음대로 갖다 쓰겠다는 편의주의적 발상 자체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차제에 국민연기금 운용 계획을 심의,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의 기능과 독립성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정부로서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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