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와삶-일본어 조동사의 연구

입력 2001-01-22 14:13:00

1977년 일본 쓰쿠바(筑波)대학에서 일본 문법학계의 거봉인 기타하라(北原保雄) 교수를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의 역저인 '일본어조동사의 연구'(1981)는 지금까지 국어학 연구에만 전념하던 필자의 학문의 물줄기를 국어학과 대조어학의 두 가닥으로 갈라놓는 계기가 되게 했다.

650쪽이나 되는 방대한 이 책은 일본어의 조동사를 구문론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투명한 논지며, 조리 정연한 논조며, 명쾌한 논증은 그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예리한 착상과 탁견, 설득력 있는 해석은 가히 논문형 저서의 모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조동사 상호 승접의 배열 순위를 기계적으로 논한 대목은 무릎을 치도록 공감되는 부분이다. 관련 연구사의 역사적 맥락을 수용하면서, 거기에다 참신한 자기 견해를 접목시켜 새롭게 구축하는 안정성이 전면에 배어 있다.

이 책은 필자의 뇌리를 구조화하여 논리적인 질서 체계를 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고교 시절에는 자연계 클래스에서 수학과 화학 과목을 즐겼던 나 자신에게, 언어의 원리 추구에 자연과학적 방법론의 적용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일깨워 준 것이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어김없이 둘이 된다는 확정성과 언어 속에 내재하는 규칙의 형이상학을 흥미롭게 시현해 주었다. 언어 연구는 말속에 감추어진 비밀과 숨어 있는 질서를 발굴하는 작업이다. 그로부터 필자는 보다 과학적인 사고로써 언어의 본질에 접근하게 되었고, 언어 형식의 연구보다 내용의 연구인 의미론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또한 범언어의 보편성 속에 엄존하는 특수성에 매료되어, 이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는 자신이 되기도 했다.

"인문학은 인간의 휴머니티를 추구하는 경륜의 과학이다. 서두르지 말고 평생을 습작하는 자세로 정진하라"

이는 일본에서의 힘들었던 연구생활을 통해 체득한 독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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