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법원이 본 친일

입력 2001-01-18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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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7년 을사오적(乙巳五賊)의 한사람인 이완용의 증손자 윤현씨(당시 65세)가 그의 증조부 재산을 소송을 통해 돠찾게 되자 우리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한마디로 친일(親日)의 대가로 받은 그 재산은 결코 그들의 소유일수 없는 원인무효이기 때문에 그 상속은 '천부당 만부당'하다는 게 국민적 공분의 골격이었다. 이 여파로 지난 48년 9월 제정됐다가 51년 2월에 폐지된 '친일파 재산몰수 특별법'을 다시 제정하자는 거센 여론이 일었다. 그에따라 독립운동단체를 주축으로 '국민연합'이 구성됐고 친일매국노들의 재산에 대한 국고환수 조치로 아예 상속이나 사유화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범국민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곧 불어닥친 대선(大選)의 소용돌이속에서 이 운동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당시 대법원은 "이완용의 재산을 인정할 수 없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그 근간이었다. 그에 부연해 대법원은 "'친일'이라는 과거사에 지나친 정의관념이나 민족감정만을 내세워 문제 삼는 것은 오히려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걸 요약하면 '친일'이라는 민족감정이 아무리 정의라 해도 실정법에 근거해서만 법원은 판결해야 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안은 약간 다르지만 그 당시의 대법원판결 논리를 정면으로 뒤집는 판결이 1심법원에서 나와 그 귀추에 관심이 쏠렸다. 서울지법 민사 14부(재판장 이선희 부장판사)는 친일파 '이재극'의 손자며느리가 낸 '이재극의 재산(경기 파주 문산땅 100여평)'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 청구소송에서 과감하게 기각결정을 내렸다. 그것도 주심이 여자판사이기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친일'의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법원이 인정하는 것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헌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사회적 정의에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은 헌법과 헌정질서를 수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에 반한 재산보호에 조력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부연했다.

결론은 대법원에서 과연 종전판례를 뒤집느냐 여부에 달렸지만 대한민국 국민정서는 물론 '친일'에 대한 위헌정신까지 투영한 명쾌한 '개념설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이는 친일.항일을 떠나 우리민족의 정통성을 우리가 어떻게 세우고 그걸 지켜나가느냐에 대한 '해답'을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웅변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오늘의 정치인들에게 이 판결 정신의 뜻을 숙연하게 새겨들었으면 하고 권하고 싶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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