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낡은 것의 소중함

입력 2001-01-18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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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전에 알지 못했던 작은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형제들이 이민을 떠나면서 두고간 오래된 자개 장롱 때문이다. 생전의 어머님이 아끼시던 장롱으로 낡아서 그런지 모두들 꺼리는 눈치들이라 내 집으로 옮겨두었는데 볼때마다 그렇게 흐뭇하고 좋을 수가 없다.

30년전쯤이었을까.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들여놓은 새 자개장에 가슴이 설레신 어머니는 밤잠을 설쳐가며 닦고 또 닦고 하셨다. 지금도 반질반질 윤이나는 장롱을 보면 그때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해서 새삼 가슴이 저려온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식을 시집장가 보낼때 그릇 하나에서 가구까지 새 것으로만 일습을 장만해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혼의 작은 아파트에도 편히 앉을 자리 없이 응접세트,침대 등 온통 가구들로 채우고 나면 사람이 주인인지,가구가 주인인지 모를 때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새 것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집의 가구도 한 번 장만하면 평생을 쓸고 닦으면서 잘 간수하다 자식에게 물려준다. 그것은 가족의 역사가 되고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호텔 같은 데도 옛날 가구들로 고풍스레 꾸며놓은 곳이 오히려 비싸다지 않는가.

우리도 이제는 '쌓아가는 문화'를 만들 때가 되지 않았을까? 부모세대는 먹고 살기 바빠 문화를 즐길 여유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쓰던 밥숟가락 하나,의자 하나,애용하던 다기 세트 등 생활 속의 전통을 귀한 것으로 물려주고 또 물려받는 지혜를 터득하게 해줌이 어떨지….

가끔 남의 집을 방문하거나 한식점 등에서 오래된 항아리나 함지박, 바가지, 짚신까지 보기좋게 꾸며놓은 걸 볼 때가 있다. 그런걸 볼때면 '내 집에 있으면 고물, 남의 집에 있으면 골동품'이라는 내 사고방식부터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롱을 보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서울사는 막내 동생에게 "엄마 냄새 맡으러 오라"고 전화나 넣어봐야 겠다. 유난히 막내딸을 챙기시던 엄마 생각 때문에….

영희유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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