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연대, 중앙을 압박해야 가능"-지방분권 서울토론회 요지-

입력 2001-01-15 12:17:00

매일신문이 새 해 한국 사회의 발전 대안으로 지방분권을 주창하고 있는 가운데 각 지에서 이를 주제로 한 토론회, 세미나, 포럼이 활발해졌다. 지난 12일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소장 최장집 교수)에서는 전국 각계의 지방분권 관련 전문가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한국 민주주의와 분권화'를 주제로 포럼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지방분권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높아지고 있는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의 대학교수,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다음은 최장집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의 기조 발표(한국 민주주의와 분권화)와 한림대 사회학과 성경륭 교수(분권화와 지역균형발전정책-평가와 과제)의 주제발표 요약.

최장집 소장 기조발표

60년대 중반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정치를 '소용돌이 정치'로 규정하면서 중앙집중화가 한국정치의 핵심적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나는 동안 중앙집중화가 한차례도 학문적 관심, 국민적 관심 나아가 국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등장하지 못했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 중앙집중화는 더 심화됐다. 각종 경제적, 사회적 지표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민주화도 한국사회를 바꾸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과 지방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지역간 특수성을 넘어서는 보편적, 객관적인 엘리트 충원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 메카니즘이 관료체제이다. 한국의 지역문제는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호남을 배제한 엘리트충원체제를 갖추면서 배태됐다. 관료제 작동이 정지한 셈이다.

다음은 중요한 사회적 자원의 다원화이며 핵심은 지방분산 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아직 한번도 실천해보지 않았던 문제이다. 분권화는 지방자치의 확대와는 다르다. 분권화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적 자원의 분산이며, 분산은 중앙의 지방으로의 확대가 아니라 여러 작은 자율적 중심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자원과 가치의 배분에 있어 단일중심사회였다. 중앙의 무시무시한 권력의 소용돌이로 무지하게 많은 자원과 사람이 집중해 생사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수단도 너무나 가혹하고 치열하다.

지방분권은 여러 문제와 연관돼 있어 단순 정책사안이라 생각지 않는다. 집중화는 사민사회의 강화와 이니셔티브, 개인권리와 자유, 시장경쟁과 효율성, 세계화, 지식정보사회의 발전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와 친화성을 가질 수 없다. 분권화는 이런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사회의 총체적 변화의 방향이라 본다.

분권화의 힘은 정부 정책 결정자나 정치엘리트들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가 분권화를 충동하는 힘이다. 지방의 여러 단체들이 중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운동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결코 분권화가 국민적 사안이 될 수 없다.

성경륭 교수 주제발표

현 정부는 대선 공약 또는 반복되는 대통령 국정지시를 통해 지방자치와 분권, 수도권 분산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확고한 정책기조임을 천명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건교부장관 업무보고시 대통령은 '진퇴를 걸고 수도권 과밀억제정책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집중화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분권화를 정면 거부하고 신중앙집권화로 가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최근 대통령공약의 중간점검을 위해 전문가를 상대로 약식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12개 문항중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 국세의 지방세 이양, 수도권 과밀의 해소 등 6개 문항에 대해 F 점수를 줬다. B 이상은 중앙정부의 사무 이양 한 항목 뿐이었다.

신중앙집권주의화 경향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판교신도시 등 전국 6대도시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단 정책이 그것이다. 행자부도 지자체장의 선심행정이 많다는 인식하에 단체장 경고제, 주민소환제, 부단체장의 국가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도를 없애려는 시도도 암암리에 진행중이다. 광역 자치단체를 없애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적 발상이다.

권한의 지방이양도 눈속임으로 보여진다. 중요한 권한은 하나도 이양않고 기능적 사무만 이양하고 있을 뿐 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은 기업본사와 대학 등 민간기관의 지방이전 촉진, 지역경제 활성화 등 표피적 분권.분산 방안만 다루고 있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지 않은가. 국회도 기초자치단체장 임명제 법안을 제출하는 등 반자치적 반분권적 이다.

대통령은 의지가 있는데 분권정책이 표류하는 이유는 경제위기 극복과 햇볕정책에 우선순위가 밀렸고 실무를 맡은 장관이 뚜렷한 철학과 비전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분권.분산 정책이 추진되면 관료집단의 불이익과 불편으로 이어져 관료집단이 이를 외면하는 측면도 있다. 관료집단은 자기 집단에게 불리한 이슈를 철저히 배제하는 속성이 있다. 다른 한 축인 여당도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갈등구도, 지역주의는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지역주의의 구조적 요인은 중앙집권적 체제에 있다. 독재정권들이 정당성이 약해 정치적 지지를 받기위해 연고지 혜택을 부여했듯 민주주의 틀속에서도 똑같은 패턴이 이뤄지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相生)을 위해 지방에는 '보다 많은 기회'를, 수도권에는 '보다 많은 자율'을 줘야 한다. 정책은 현 여건으로 볼 때 '선 지방육성, 후 수도권자율화' 기조가 적당하다. 지방육성은 국가적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 정부가 분권, 분산, 분업의 3분정책을 얼마나 실현할지에 대해 기대감과 회의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에 매달려 많은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본다. 이에 따라 우선 중앙부처의 지방이전을 권하고 싶다. 국토개발연구원 연구진과 공동 연구한 결과 중앙부처 1~3개를 지방으로 이전하면 혁명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중앙부처의 이전은 이와 관련된 산하기관이 동시에 이전해 큰 분산효과가 있으며 동시에 권한의 이양까지 이뤄진다면 중앙집권, 수도권 집중 양태를 바꿀 수 있다.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지방이양도 중요하다. 중소기업청, 교육청 등 지방행정기관을 중앙에서 통제하려는 발상을 버려 지방이 독자적 발전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부산은 항만도시이나 항만청과 협조가 안돼 항만에 대한 아무런 자료도 정보도 없다.

현 정부의 분권정책은 별 성과없이 지나갈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와 시민사회가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연구하고 지방간 연대를 통해 중앙과 정치권을 압박해야 분권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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