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고문치사 14주기 남영동 대공분실 위령제
"종철아 아부지가 왔대이. 더이상 외로워 말고 이제는 편히 쉬거래이"
12일 낮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대공분실 509호실. 지난 87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중이던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숨진 현장인 이곳에서 14년만에 처음으로 박군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렸다.
14주기를 이틀 앞둔 이날 스님 3명과 함께 한이 서린 장소를 찾은 아버지 박정기(72)씨는 준비해온 아들의 영정과 위패, 촛불, 향, 국화, 장미꽃 다발 등을 하나하나 제상에 올리며 유난히도 가슴이 저리고 손이 떨려왔다.
위령제가 거행되는 동안 지난 14년간 박씨의 재를 맡아온 양산 통도사 성전암주지 백우스님 등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하자 박씨는 세면기 위에 놓인 아들의 영정만을 말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어머니 정차순(69)씨는 아들이 고통속에 숨져간 곳을 차마 찾아오기 두려워 함께 위령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들이 떠나간 대공분실의 굳게 닫힌 철문 주변만을 맴돌며 14년이라는 질곡의 세월을 애끓는 마음으로 보내야 했던 아버지 박씨는 염주를 쥔 손을 모은 채 눈만 지긋이 감고 있었다.
박씨는 가로 10㎝, 세로 1m의 좁다란 창문 2개뿐이라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다소 어두운 4평짜리 조사실 구석구석을 매만지며 아들의 자취를 더듬으려 했고, 조사실 곳곳까지 힘겹게 초점을 맞춰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편히 너를 보낼수 있을 것 같구나". 위령제가 끝나면서 '고밀양춘삼박종철영가(故密陽春三朴鐘哲靈駕)'라고 씌어진 위패가 태워져 재로 무심하게 하나둘씩 욕조속으로 흩어지자 아버지는 다시 한 번 영정속의 아들을 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하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듯 다시 한번 욕조와 변기, 낡은 담요와 베개가그대로 놓여진 침대 등을 매만져보던 박씨는 국화 한송이를 영정에 바치던 중 한꺼번에 밀려든 지난 세월의 한을 참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박씨는 "종철이가 외롭게 떠난 자리에 직접 와보니 '종철이가 살아있으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하는 생각이 더 간절히 들어 마음이 저려왔다"며 "종철이가 죽음으로 지켜낸 양심과 지조를 본받아가는데 아버지로서 남은 여생을 바칠 것"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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