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김창식(대구교육대교수·미술교육학)

입력 2001-01-12 14:28:00

라피엣(Lafayette). 내가 수학한 미국 인디애나주의 작은 대학도시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긴 여름방학의 도시는 마치 몇 개비 남지 않은 담배갑같다. 방학이 흐트러놓은 도시의 빈 공간은 푸르름과 불볕더위,곤충과 동물들,잔디깎는 기계음과 가끔씩 방문하는 토네이도(회오리태풍)가 메울 뿐이다.

학업에 대한 긴장감으로 휴식을 즐길 여유조차 없었지만 풀이 죽은 아들 태환이를 보면 측은했다. 같이 놀 친구들이 모두 부모들을 따라 여행을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철부지 아들의 가여운 정서는 부모로서의 나의 의무감을 자극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한나절이면 해결할 거리에 있는 자연휴식처나 놀이터 나들이였다.창조주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자연과 그것을 지키려는 미국인들의 노력은 참으로 부러울 정도였다. 모든 자연 휴식처는 인간의 세심한 보살핌 아래 제 모습을 간직한 채 사람들을 맞이하였고 이용자들 또한 자연의 일부로 동화돼 있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인공놀이터 역시 단순하고 화려하지 않은 놀이기구들로 준비돼 있었다. 넉넉한 벤치와 나무그늘, 춤과 생음악을 위한 공간, 간단한 스낵과 기념품을 파는 곳 등 모든 것이 '경제적 목적'보다는 '놀이와 휴식' 그리고 '아이들'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땀의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아들의 미련을 훌훌 말아 돌아 오면서 아내와 나의 가슴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피어나는 파스텔색 같은 삶의 정서로 물들곤 했다.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 달린 것일까. 주어진 환경과 문화는 다를지라도 자연 속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있는 정서와 태도는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함께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성으로 바라보며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내일이 보고 싶다.

대구교육대 교수. 미술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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