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돈 어디서 나왔나

입력 2001-01-12 14:58:00

한나라당 강삼재 부총재는 최근 정국의 최대쟁점으로 부상한 96년 총선자금이 안기부 자금인 줄 정말 몰랐을까.

강 부총재는 4·11 총선 당시 신한국당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있으면서 안기부 예산 940억원을 자신이 관리하던 경남종금 차명계좌로 넘겨받아 이를 신한국당 등의 총선출마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혐의에 대해 시종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그는 최근 이회창 총재 주재로 열린 총재단 회의에서 수차례에 걸쳐 "'의원직을 걸고' 안기부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강 총장의 이같은 해명에 대해 한나라당 수뇌부와 상도동의 입장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은 강 부총재의 주장에 신뢰성이 있다고 믿는 분위기다. 앞뒤를 잘 살피는 강 부총재의 평소 스타일에 비춰볼 때 당시 안기부 기조실장이던 김기섭씨를 직접 만나 안기부 돈을 건네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따라서 강 의원이 안기부 돈을 받았다면, 청와대나 고위층 비선라인을 통해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한나라당측은 분석한다.

이 총재가 11일 낮 인천 로얄호텔에서 열린 한나라당 인천시지부 신년인사회에서 "정말 그 돈이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에) 들어왔다면 왜 우리가 책임을 지지 않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한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권철현 대변인은 한 술 더 떠 "국고수표는 사용목적과 사용자가 분명히 명시되는 게 아니냐"면서 "안기부 자금 국고수표가 정말 강 부총재 계좌로 들어갔다면 검찰이 증거를 밝히라"고 추궁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강공으로 나오는 배경에는 돈 문제에 관한 한 현재의 여권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나름의 자신감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국고수표를 조사하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아들 현철씨, 안기부 운영차장이었던 김기섭씨의 직·간접적인 연관성이 드러나고, 결국상도동의 사생결단식 'DJ 비자금' 폭로전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강 부총재만 공세의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11일 열린 총재단 회의에서 이환의 부총재 등이 "YS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에 따르면 YS 보유자료는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은 'DJ 비자금' 내역과 재임중 부정축재 등에 관한 자료라고 하는데 이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은근히 상도동을 압박한 것도 이런 시각과 무관치 않다.

권 대변인이 이날 "안기부자금 국고수표의 어떤 것이, 어떤 방식으로 세탁돼 누구를 통해, 그리고 일부는 어떻게 사라지고, 일부는 강 부총재에게 전달됐는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상도동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YS는 재임중 돈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YS는 물론 차남 현철씨, 이원종 정무수석은 전혀 모른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강삼재 의원은 여러 곳에서 선거자금을 조달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기고 있다.

박종웅 의원은 문제의 자금이 YS 통치자금의 일부였을 것이라는 일부 추측에 대해 "안기부 돈이 아니면 YS 통치자금이라는 등식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며 "당시는 기업과 개인들로부터 익명의 지원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 아니냐"고 말해 신한국당차원에서 거둔 '비자금'일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철씨 등이 기업체 수금액 또는 대형발주공사의 커미션 등을 다른 별도 계정에 숨겨두었다가 안기부 예비비 계좌를 통해 세탁, 강 부총재에게 넘겨주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를테면 김기섭씨가 계좌추적을 하다 안기부 계좌로 접근하면 수사를 중단해온 과거 검찰 관행을 악용, 안기부 예비비 계좌를 돈세탁에 이용했고, 검찰도 출처가 예비비 계좌여서 예비비로 판단한 게 아니냐는 시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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