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아닌 치료목적 주사 불필요

입력 2001-01-09 00:00:00

동네병원에서의 한 장면. "의사 선생님, 주사를 맞아야 치료가 되지 않겠습니까? 주사 한대만 놔 주세요" "약만 먹어도 충분합니다. 주사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풍경도 있었다. 환자 보호자가 애처롭게 하소연했다. "의사 선생님, 그렇게 아픈 주사를 어린애 한테 마구 찔러도 괜찮겠습니까? 꼭 매일 와서 주사를 맞아야 하나요?" 그러나 의사는 한마디로 쏘아 붙였다. "아주머니는 밥도 안먹어요? 주사를 맞아야 치료가 되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사에 대한 신뢰는 유별나다. 환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일부 의사들도 마찬가지. "병원은 곧 주사를 맞는 곳"이라고 인식될 만큼 병의원을 찾는 환자 2명 가운데 1명 꼴로 주사를 맞고 있다.

◇감기에는 주사가 최고?

감기는 동네 병의원을 찾는 가장 큰 이유이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감기에는 주사 한방이 최고"라며 감기만 걸리면 주사 맞겠노라고 병원을 찾는다. 먹는 약보다 빨리 낫고 효과가 좋다는 마술 같은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대구 파티마병원 알레르기·감염 내과 이중기 과장은 그런 분위기에 아주 비판적이다. "주사를 사용하는 경우는 먹는 약이 개발되지 않았거나, 약을 먹을 수 없거나, 체내에서 약물 흡수를 빠르게 해야 하는 경우이다. 감기 치료에 쓰는 주사제는 보통 진통 소염제나 항생제이다. 그런 것은 먹는 약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주사는 비상 처방

주사제 처방이 필요한 환자는 10~20%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의들의 시각이다. 내과 질환의 경우 폐렴·고열·장염, 심한 통증·염증, 급작스런 울혈성 심부전 등이 그것이다. 그런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약처방으로도 충분하다는 것김병준 내과 의원장은 "주사제를 사용해야 할 환자는 10명 중 1명 꼴에 불과하다"며, "가벼운 증세에도 주사를 놔 주기 바라는 환자들의 잘못된 생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만성 염증 환자가 많은 이비인후과도 마찬가지. 심한 편도선염이나 중이염 등 세균 감염이 아주 심한 경우, 약을 먹어서는 효과가 없는 경우, 통증이 극심한 몸살 감기 등에는 항생제 주사나 진통제 주사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이런 환자는 극소수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이비인후과 박재율 교수는 "외래 환자 중 주사제 처방이 꼭 필요한 환자는 100명 중 1, 2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주사를 맞을 만큼 증세가 심하다면 입원치료를 받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대부분 주사는 불필요

WHO(세계보건기구)는 주사에 관해 명확한 지침을 내려놓고 있다. 예방주사가 아닌 치료 목적 주사의 대부분은 불필요하다는 것(www.injectionsafety.org 참조). 우리나라 의사·환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WHO는 매년 세계적으로 120억 회의 주사가 사용되고 있으며, 그 중 90%가 치료목적으로 놔지고 있으나 대부분이 불필요한 주사라고 정리했다. 상당수 국가에서 환자들이 "주사가 더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고 의사들도 환자들의 요구에 맞춰 주사제를 남용하고 있다고 WHO는 분석했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더 많은 진료비를 받기 위해 주사제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이 국제기구는 경고했다. 불필요한 주사제는 환자들에게 더 많은 진료비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 모두가 주사제를 남용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게 세계보건기구가 내린 결론이다.

◇어떻게 대처할까?

전문가들은 우선 주사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환자들에게 충고한다. WHO가 경고한 대로, 주사를 맞을 경우 감염 등 다른 위험이 오히려 많다는 사실도 환기토록 주의시킨다. 이것이 습관화된다면 의사에게 주사제 처방을 스스로 요구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그런 뒤에는 의사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주게 돼 의사의 순수한 의학적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돼 또다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의사가 주사제를 처방했을 때는, 그게 어떤 주사제인지 설명을 요구하고, 가능한 한 먹는 약으로 바꿔 주도록 요구하는 것도 현명한 환자가 되는 첫걸음이라는 안내도 있다.

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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