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세타령 나무꾼들의 '어사용'
▨신세타령 나무꾼들의 '어사용'
온난화 현상으로 겨울이 예전 같지 않다. 삼한사온의 주기도 깨지고 북극의 빙산도 녹아 내린다. 이상난동으로 생태계가 교란되고 지구 체온의 상승으로 육지가 물바다로 변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온난화 위기와 반대로 냉동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사정은 더 긴박하다. 해고와 실직과 부도의 시절이라 노동자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차가운 북풍한설이 몰아친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민들의 처지도 마찬가지이다. 비닐하우스의 기름보일러도 가동을 멈춘지 오래다. 농촌 어른들은 기름값 폭등으로 새삼스레 헌 지게를 찾아 지고 나무하러 길 없는 산을 오른다.
◈어느 누가 알아 주노
나무하러 나서는 늙은 농부들의 산길에는 신세타령이 절로 나올 만하다. 그렇지만, 이미 소리의 신명을 잃어버린 탓에 침묵만 가득하다. 옛소리 한 가락을 억지로 불러본다.
지게목발만 뚜드리고
신세 없이 누워 있는 이내 신세
가련하고 원통하드라아~
악마고수야 황금만 알었지
생사람 이래 고는 줄은
어느 누가 알아주노호호~
"지게를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 양지쪽에 지게를 내려놓고 비스듬하게 기대고 누워 있어 보면, 무심히 오입 가고 싶은 생각도 나고 슬픈 생각이 나거든. 그때 노래를 부르는 게 신세타령이라" 안동 조차기 어른은 '어사용'을 신세타령이라 했다.나무꾼 소리 '어사용'은 산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의 '어산영(於山詠)'에서 온 말이다. 나무꾼들이 나무를 하려고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며 지게목발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면서 부르거나 나무를 하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깐 허리를 펴고 신세타령하듯 토해 내는 까닭에, 다른 민요에 비하여 사설과 가락이 자유롭고 나무꾼들의 심정을 잘 드러낸다. 처한 형편에 따라 사설도 다양하고 가락도 흥겹거나 구슬퍼서 퍽 대조적이다.
◈어서 가서 나무 베세
전라도 지역의 나무꾼 소리는 가락이 흥겹고 명랑하다. "아침 해가 솟아온다/ 산밭 타고 오르세나/ 에햐 에헤야/ 산천경개 구경 가세" 동틀 무렵 아름답게 펼쳐진 산천을 구경하면서 산에 오르는 나무꾼의 부푼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평야지역 소리답게 숨가쁘지 않고 경쾌하여 2음보를 이룬다.
청청한 저 소나무
하늘 높이 솟았구나
에야 에헤야
어서 가서 나무 베세
솟아오르는 붉은 아침해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푸른 소나무의 기상이 훌륭한 대비를 이룬다. 평야지역은 농작물 수확이 넉넉하므로 나무하는 일이 땔감을 마련하는 데 그쳐도 좋다. 그러나 함경도나 강원도 등의 산악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나무하는 일이 땔감의 자급자족에 그치지 않는다. 식량 조달의 긴요한 수단이다.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땔나무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 자연히 산악지역 나무꾼들의 정서는 다르다.
일락서산에 해는 떨어지고 에야
우리 할 일은 늦어만 간다네 에야
함경북도 소리이다. "여기도 산이로구나 에야/ 추운데 소리나 한마디 하구보자"하고 시작한다. 이 지역은 오나가나 산이다. 너른 평야는커녕 빤한 들이 잘 없다. 남도의 평야지역보다 북쪽의 산악지역 추위는 한층 맵다. 산중에는 해도 빨리 떨어진다. "우리들은 자지도 못하고 에야/ 이런 고생하고 사네" 하는 푸념이 탄식하듯 길게 터져 나온다.
◈남 날 적에 나도 났건마는
"여기도 산이로구나"에서 드러난 공간의 폐쇄성과, "일락서산에 해는 떨어지고"에서 드러난 시간의 긴박성이 나무꾼의 어려운 신세를 잘 나타낸다. 자신이 놓여 있는 시공간을 한층 절박한 처지로 묘사하면서 고난과 울분을 털어놓은 셈이다. 처절한 심정이 심화되면 적극적인 신세타령이 나온다. "남 날 적에 나도 나고/ 내 날 적에 남도 났건마는" 내 팔자는 어이 기박하여,
석자 세치 감발에다 육날 미틀이에다
목발 없는 지게에다 썩은 새끼 지게꼬리에
황경피 낮작에다 지게 꽂아 짊어지고
쳐다보니 절벽이요 내려다보니 만학이라
경북 영양지역 소리이다. 노래를 부른 오수근 어른은 머슴살이를 한 분이다. 나무꾼의 남루한 행색과 딱한 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아래 위 어디를 보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높은 절벽과 깊은 골짜기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부귀영화 하건마는/ 내 팔자는 왜 이런고" 하는 불만의 자탄이 터지는 것이다. 평생 지게 짐을 지면서 낫자루 품을 팔아야 먹고사는 것이 여름농군들이자 겨울초군들이다. 양반 자제들은 따뜻한 아랫목에 책장을 펼쳐 놓고 일렁일렁 목청만 돋우고 앉았는데, "이놈 팔자 무슨 일로/ 지게목발 못 면하고" 얼어붙은 눈산을 쉴 새 없이 헤매고 다녀야 하는가. 정말이지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이놈 팔자 어이하여
항상 지게 못 면하고
남의 집도 못 면하고
죽자 하니 청춘이요
사자 하니 고생이라
세상은 크게 달라져도 그때나 지금이나 불평등은 여전하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94.6%의 국민들이 우리 사회의 빈부차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부의 공정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경제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조차도 직종에 따라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에 비해 5배나 된다. 경제적 소득의 양극화는 다양한 문화생활의 격차까지 조장한다. 소득에 따라 인터넷 이용률도 2배 이상 차가 나며, 상위 25%의 교육비 지출은 하위 25%의 무려 10배에 가깝다.
◈가슴에 붙은 불은 누가 끄리
빈부차의 심화와 불평등 조성에 지도층이 오히려 앞장서고 있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기업가들의 불공정성이 가장 높다는 여론이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도 잘 나가는 사람은 더 잘 나간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법대로 사는 사람은 손해보게 마련'이라는 사람들이 80%나 된다. '청와대 청소부는 낙엽 대신 돈을 쓸어 담는다'는 말이 유행하고, 어떤 공기업 운전기사는 연봉이 5천만 원이라니 나라 경제가 거덜나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러고도 구조조정이다 경제개혁이다 하면서 힘없는 일용직과 근로자들을 해고하지 못해 안달이다.
붙으란 금전은 기 어디 가고 아니 붙고
붙지마랑 지게등테는 날만 새만 이다지도 왜 붙느냐
이 산천에 불이 붙는 거는 소방대원이나 꺼주건마는
이내 가슴에 불이 붙은 거는 어느 누가 꺼주리오
돈 벌자고 머슴살이하는데 돈은 안 붙고 지게의 등받이만 평생 붙어 다닌다. 느닷없이 노숙자 신세가 된 실직자들의 등에는 지하철 시멘트 바닥의 냉기가 얼어붙는 듯 달려든다. 그러나 찬 소주 한 잔을 들이킨 빈 속은 도리어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하릴없이 의자를 돌리는 사람들의 등쌀에 할 일을 두고도 쫓겨나야 하는 불공평한 세상 탓이다. 어느 누가 이 불을 꺼 줄 것인가. 외려 그들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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