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차 문제

입력 2001-01-05 15:06:00

문제 : 다음의 글 (가)와 (나)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의 '기학(氣學)'의 일부를 발췌, 정리한 글이다. 두 글에서 공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지적 탐구의 태도를 밝히고, 그러한 태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 논술하시오.

(가) 무노디 경은 발니바비의 수도인 라가도에서 제일 높은 계급의 인물이었고 몇 년 동안 라가도의 시장을 지냈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약 40년 전에 발니바비의 몇 사람이 허공에 뜬 섬나라 라퓨타에 올라가 약 5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약간의 지식을 배운 다음 기분이 몹시 들뜬 채 돌아왔다. 이 사람들은 돌아오자마자 이제까지 행해지던 모든 운영 방식을 트집잡으며, 예능, 학문, 언어, 기술을 뜯어 고쳐 새로운 토대에 올려놓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은 라가도에 연구소 설립 허가를 왕으로부터 얻어냈다. 이런 연구소에서는 학자들이 농업과 건축술의 새로운 규칙과 방법을 생각해내고, 한 사람이 열 명 몫을 해낼 수 있는 다양한 기구와 연장을 발명하려고 했다. 가령 궁전을 일주일만에 짓고, 더욱이 그 재료는 아주 튼튼해서 영원히 수리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계절에라도 이 땅의 모든 과일을 익게 만들고, 생산량을 지금의 열 배로 증가시키며, 기타 수많은 놀라운 일을 해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한 일은 이러한 계획이 어느 하나도 완성되지 못했고, 나라 전체는 황폐해졌으며, 사람들은 굶고 헐벗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희망 반 절망 반으로 그들의 계획을 실현시키는 데에 더 열심히 몰두하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무노디 경의 도움으로 라가도에 있는 대연구소를 구경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이 연구소에는 500여 개가 넘는 연구실이 있었다. 거기서 제일 먼저 만난 연구자는 8년 동안이나 오이에서 햇빛을 추출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추출한 햇빛을 유리병에 집어넣어 완전히 밀폐해 두었다가 기후가 좋지 않은 계절에 방출해서 공기를 데우겠다는 것이다.

나는 또 하나의 연구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독한 악취를 못 이겨 뛰쳐나올 뻔했다. 이 방의 연구자는 이 연구소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의 얼굴과 수염은 연한 황색이고, 그의 손과 옷에는 오물이 묻어 있었다. 그가 이 연구소에 처음 온 이래로 해 온 일은 인간의 배설물을 여러 성분으로 분류하여, 담즙으로 물든 색깔을 제거하고 냄새를 증발시켜 없애고 타액을 걸러 내서 원래의 음식으로 환원하려는 연구였다.

(나) 이미 깨우쳐 얻은 것을 배우고 전하는 것을 학(學)이라 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유(有), 무(無), 허(虛), 실(實) 및 미세한 일들에까지 학이라는 명칭을 갖지 않은 것이 없어서 각기 그 능한 바를 주장해 왔다. 그러한 여러 학 중에는 민생(民生)에 보탬이 되는 것도 있고, 해가 되는 것도 있으며, 보탬도 해도 없는 것도 있어서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그러나 참으로 잘 선택하여 쓰면 모두 나에게 권유와 경계가 될 수 있지만, 오직 한탄스러운 것은 어떤 학을 처음 창도한 자가 그 단서를 약간만 드러내면 그것을 전하는 자가 각기 자신의 뜻을 보태고 늘려서 마침내 근본 취지를 잃어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까닭을 궁구해 보면 제창한 근본 원천이 혹 어긋나 새고, 여기에 또 군더더기가 붙어 말꼬리를 잡아서 따지고 들 만한 것이 있거나, 혹은 유무와 허실의 견해가 편벽되고 막혔거나, 혹은 이기기를 힘쓰고 기이한 것을 좋아해서 점점 잘못된 곳으로 깊이 빠져들었거나, 혹은 어지러울 정도로 허황하여 붙잡기 어려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말류의 폐단은 제쳐두고라도, 어긋나고 어지러워질 근본 원인이 이미 스스로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학의 근본을 세우는 것이 막중하고 어렵지 않겠는가. 천하의 학문을 통괄하여 시비를 논하고 우열을 정할 때는 천하 민생이 실제로 쓰는 바와 천하의 정치가 반드시 근거로 삼는 바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때 붙잡을 수 있는 형체가 있고, 실제 사물에 처해서 증명할 수 있다면 이는 곧 실학(實學)이다. 이것은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다그러나 형체가 없는 신(神)에 관한 이론은 그 유래가 이미 깊고, 모든 일의 조짐을 알지도 못하는 신(神)에게 돌렸다. 또 이(理)에 관한 이론은 중고(中古) 때에 나타나서 모든 변화를 역시 형체도 없는 이(理)에서 탐구했다. 이 두 이론이 전해지고 널리 퍼지면서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익숙해졌고, 시대를 거치며 더욱 복잡한 설명들이 덧붙여졌다. 그런데도 그것을 배척하려는 이론은 근래에 와서야 점차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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