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참행복' 찾기

입력 2001-01-05 14:23:00

'부동산은 없고/아버님이 유산으로 주신 동산(動産) 상자 한 달 만에 풀어보니/마주앙 백포도주 5병,/호주산 적포도주 1병,/안동소주 400cc 1병,/짐빔(Jim Beam) 반 병,/통 좁은 가을꽃 무늬 셔츠 하나,/잿빛 양말 4켤레./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 장.' 중진시인 황동규(서울대 영문과 교수)씨가 지난해 가을 타계한 부친(소설가 황순원)을 기리는 시 2편('현대문학' 1월호 발표) 중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의 일부다.

잘 알려져 있는 대로 현대 소설사의 우뚝한 봉우리인 황순원은 세속과는 담을 쌓은 채 염결하고 올곧은 삶으로 일관, 우리 사회의 사표(師表)가 된 소설가다. 그 같은 삶을 흠모하는 아들의 이 그윽한 사부곡(思父曲)이 흥건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시인의 표현 대로 그의 모습이 '꼿꼿해진 생각처럼 꽃 위에' 앉아 있고, 그런 삶을 따르고 지향하는 청정하고 고고한 삶의 자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 일들을 바라보면 서글프기 짝이 없다. 세속주의가 판치는 기성세대들은 차치하더라도 10대 청소년들에게마저 배금주의와 쾌락주의의 끝간 데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몸매 관리를 위해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는 여중고생들의 철분 결핍성 빈혈이 심각(16세 42%)하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심해진다니 기가 막힌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부유층 가정의 여고생들이 '돈도 벌고 재미있다'며 접대부로 나서는 풍조다. 4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소개소 직원과 유흥업소 업주들을 무더기로 붙잡았지만, 10대들의 가치관은 정말 걱정스럽다.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윤락행위를 하고도 후회나 자책감은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안방인냥 수다를 떨고 되레 형사들까지 놀려댔다고 하지 않은가.

생활에 만족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는 너무나 상대적이다. 가난해도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 대한 만족도는 인생의 목표와 기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 있다. 황동규씨의 환한 외로움을 그린 사부가는 그래서 더욱 고귀해 보인다. 누가복음의 '돌아온 탕자'처럼 집으로 돌아가 참행복을 되찾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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