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으로 나라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국민 모두가 초조해하던 97년말 무렵 세계적 컨설팅회사 부즈.앨런&해밀턴의 한국보고서는 우리에 대해 "변하지 않으면 부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지적해 충격을 준 사실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은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의 협공으로 넛크래커(호두 깨는 기구)속에 낀 호두와 같은 처지라는 설명은 이제 의심할 여지 없이 현실화되고있다.
수출통계만 보아도 90년까지 우리보다 뒤지던 중국이 10년(99년까지)간 줄곧 앞질러 214%나 증가해 우리의 증가율 121%보다 앞섰고 우리의 수출총액보다 36%나 많은 1천951억5천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실적만 앞선게 아니다. 중국의 경쟁력은 바로 우리의 기술수준과 시장을 따라잡은 것이다. 일본도 우리처럼 침체를 못벗어나고 있지만 99년부터 수출이 상승세로 돌아서 서서히 경쟁력을 회복, 철강 등 일부 품목에선 이전처럼 우리와의 무역역조를 엄청나게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올해는 벽두부터 경제패전의 침체기를 벗어나기위해 기업은 기업대로 세계최고.최강의 실천 청사진을 내놓고 산.학.관(産學官)은 세계최강을 목표로한 IT국가전략 등 수많은 21세기 초대형 프로젝트를 발진시켰다.
◈4중고 시달리는 한국경제
그러나 한국에는 21세기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신년벽두에 느닷없는 "국회의원 꿔주기"로 국민의 뜻과 관계없는 원내교섭단체가 탄생하는 깜짝 쇼가 벌어져 세상이 시껄시껄하다. 그것도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정도와 원칙을 지키며 국정의 선두에 나설 것"임을 강조하는 그 시점에 벌어진 일이어서 더욱 기가 막힌다. 꼼수정치의 옹졸한 리더십이 만들어내고 있는 여야의 마찰음은 한국이 호두알처럼 부숴지기 시작하는 소리로 착각이 들 정도다.
◈정부무능과 정치혼란이 원인
부즈.앨런 보고서가 발표된지 3년, 현 정부의 집권기간 만큼의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그때의 충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위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그 중심에서 때로는 멀게 때로는 가깝게 맴돌며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다. 당시의 연구팀은 92년이래 정부기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단체들이 숱한 전략과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통한 개혁을 실행하고자 많은 논의를 진행시켰으나 효과적 정책이 수립되지 않았고 실천이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이같은 지적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김대중 정부가 실패한 김영삼 전대통령을 살려낸다는 얘기마저 나올까.
더욱이 이 연구팀이 제시한 한국경제의 4대악화원인은 거의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에대한 합의도출의 실패, 향후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에대한 비전수립실패, 경제변혁기에 발생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모색실패, 변혁기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적절한 주체와 리더십의 부재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이 네가지 원인에 묶여 위기를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도 현정부는 그동안 이 문제에대해 너무 낙관했고 때로는 오만했기 때문에 제2위기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비전세우고 실천하는 지도력 시급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의 대립,개혁입법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해집단의 갈등, 심지어 정부기관의 개혁마저 기관이기주의로 흔들리는 상황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치 못하고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도출에 실패한 것임을 말한다. 지금 정부는 대통령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구조조정과 개혁만 강조할 뿐 그것의 목표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비전없는 구조개혁만 외치고 있어 방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개혁에서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문제, 개혁피로감과 도덕적 해이, 재벌해체에 따른 대안제시 등 변혁기의 부작용 흡수에도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개혁의 주체가 DJP연합인지, DJ세력인지, JP세력인지 알 수 없다. 지금의 개혁혼미는 이같은 정치.사회적 성격이 다른 세력의 이합집산과 모호성에서 오는 것이기도하다.
그러나 늦었다고 포기할 수 없다. 더 어렵더라도 새해에는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려야하듯이 이제라도 비전을 수립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고 방향이 정해지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실천에 옮겨야한다. 그것은 국정책임자의 지도력문제다. 정부.여당은 국민을 속이려는 꼼수를 버리고 정도로 이들 네가지 과제를 풀어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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