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안의 새해 소망

입력 2001-01-03 14:02:00

"새해엔 남편 일이 잘 풀리고, 애들에게도 아버지의 자리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세 아이의 어머니 오영순(33·대구시 이곡동)씨가 새해를 맞으며 갖는 기대이다. 벤처 사업가로 정신없이 뛰는 남편 이상철(33)씨의 일이 올해엔 좀 더 나아져 가정에 여유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하다.

지금까지는 많이도 힘들었다. 3년 전 인터넷 사업에 뛰어든 남편. 벤처 붐이 일기 전인 당시엔 인터넷 일을 한다고 했다간 사기꾼 취급 받기 일쑤였다. 주위 시선은 거의가 "쓸 데 없는 짓 한다"는 것. 하지만 남편은 아랑곳 않고 인터넷 전문업체 '와우 코리아'를 만들어 지금까지 버텨 왔다.

집에 들어오면 그대로 쓰러져 자기 바쁘고, 일어나면 바로 일터로 뛰어가는 남편이 안쓰러우면서 야속하기도 했다. 준학(6)·민성(4)·영호(2). 아직 어린 세 아들 얼굴 한번 쳐다볼 여유없이 일에 빠진 남편을 탓할 수도 없지만, 혼자서 세 아이 키우기 역시 만만찮기는 어쩔 수 없는 일. 야근한다고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하는 아버지에게 익숙해진 애들에게도 "안녕히 가세요" 하는 인사말이 아예 입에 붙어버렸다.

"그래도 이제는 맏이가 좀 커서 정신을 차릴만 해요".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고 놀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씨는 그래도 아이는 그 정도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세 아이 모두 돌 때까지 모유를 먹여 키운 그녀는 막내가 재롱 떠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고 환히 웃었다.

남편이라고 새해를 맞은 소감이 다를 리 없었다. "지난 3년간 일한다고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이젠 아내와 애들에게 잘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족에게 미안함도 적잖다고 했다. 벤처 열기를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쓰러져간 업체만도 부지기수.

"대구지역이 보수적인데다 지역 발주 업체들조차 서울로 일을 맡기는 풍토가 여전해 지역 인터넷 업체들이 버티기 더 힘듭니다". 조그만 가능성만 보여도 바로 서울로 떠나 버리는 업체들이 많았지만, 이씨는 대구에서 제대로 된 웹 에이전시로 자리잡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올 상반기 안으로 거품이 빠지고 경쟁력 있는 업체들만 살아 남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일도 가정도 내실을 거두는 한해를 만들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류지형(43·경일대 토목공학과 교수)씨 가정은 '가족의 결속'을 다지는데 관심이 높았다. 때문에 새해에도 이 일에 더욱 힘을 쏟을 작정이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과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다고 확신하는 류씨 가족은 '아버지 학교'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주위에 어려운 분들도 많은데 하루 세끼 배불리 먹고 건강하고 화목하게 살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 아닙니까? 가정이 붕괴되고 아버지가 권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힘이나 지위가 아니라 참사랑이 바탕 돼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진정으로 하나가 돼 가정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1998년 9월 대구 두란노 서원에서 시작한 '대구 아버지 학교' 1기 출신인 류씨는 지금도 토요일 수업이 있을 때 마다 참가해 이 학교 프로그램 진행을 돕고 있다. 부인 주성옥(41)씨도 막내 영무(8·대구 지산초교 2년)와 함께 식사 준비 등을 거들면서 가정과 부모의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가사·운동 등 많은 부분을 공유하려 애쓴다는 이들 부부는 그래도 자녀 문제에는 힘든 부분이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애들을 이해하고 눈높이를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 "애들이 다른 방향으로 나갈 때는 감정이 폭발해 버려 징계가 앞서고 강압적으로 명령하는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멀리 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류씨 부부는 아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먼저 들어주고 끈기와 사랑으로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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