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영남, 호남, 강원, 제주 그리고 이북

입력 2001-01-03 14:11:00

새해 아침을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보낸다. 부모님이 그곳에 사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식구들이 모두 모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뿐이랴만은 이북이 고향이신 아버지 덕(?)에 우리들은 가까운 친척들이 별로 없다. 따라서 명퇴당한 신랑 따라 미국에 간 내외를 제외하고는 네 형제가 집요하게 서울로 모여든다. 이틀 정도의 시간을 같이 지내다 다시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오지만 늘 그런 만남은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이런 자리에서는 늘 자기가 사는 곳이 어떤가가 화제가 된다. 나만 해도 이 곳 대구에서 10년을 보냈으니 이제 대구시민이라 자부하지만 전라도에 사는 형도 그만큼 되었으니 전라도 도민이고 제주도 여성과 결혼하여 부산에 사는 형도 부산시민이다. 강원도가 고향인 여성과 결혼한 동생도 강원도 정서에 익숙해 질 수밖에. 각기 삶의 터전에서 겪은 일들은 이것저것 많지만 두 차례씩이나 겪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때가 되면 가히 모임 자체가 흥분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집요하게 쓰는 조카와 대구사투리밖에 모르는 우리집 딸애, 그리고 좀더 진한 부산 조카의 사투리가 말싸움하는 모습은 가관이다. 사이사이 끼어드는 이북 사투리까지 보탠다면 거의 대한민국 언어의 축소판이다. 형제들 간에도 의견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을 고달프게 했던 여러 정치적 사건들을 보는 시점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형과는 위천공단문제로, 작은 형과는 현정부의 인사편중문제로 얼굴이 불붉어지기도 했지만 그러나 싸움이 크게 벌어지지도 서로 미워하지도 않았다. 아마 훗날 사촌들 간에도 미움 따위는 없을 터이다. 오히려 그것이 즐거움이 될 때도 있었다. 서로 우애있는 형제이고 서로에 대해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까. 새해 아침, 우리의 지역감정도 그런 것일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서로에 대해 같은 배를 탄 형제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대구대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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