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동안 우리 농가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연초부터 구제역 파동으로 축산농들을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이 소동이 잠잠해 지는가 싶더니 여름 어느 날 태풍이 몰고 온 폭우가 낙동강 둑을 삼켜 버렸다.
황금벌판을 예고했던 벼들은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수마에 휩쓸려 떠내려 갔고, 사과·배 등 과일도 농민들의 한숨을 안고 맥없이 떨어졌다.
거침없이 밀려오는 오렌지·마늘 등 수입농산물로 인해 국내 농산물값이 폭락, 우리의 농업기반을 뿌리채 흔들어 버렸다.
농민들은 "이대로 살 수 없다"며 땀흘려 지은 농산물과 영농의 필수품인 농기계를 반납하며, 또 농가부채 탕감과 '똑바른 농정'을 요구하며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바로 엊그저께 일이다. 해를 넘기면서 벌써 망각속에 묻혀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억겁의 연속성을 지닌 농업의 본질을 알고 있는 이들 이라면 우리의 농촌과 농사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의 농업관을 새롭게 정립, 농민들의 설자리를 더 넓혀줘야 한다.
쌀, 아니 논을 천덕꾸러기로 전락시킨다면 오늘의 경제적 난국을 헤쳐 나가기는 커녕 언젠가는 꽃피울 장밋빛 꿈을 되레 잿빛으로 만드는 꼴이다.
21세기의 손꼽을 화두는 아마 '환경'과 '정보'일 것이다.일단 정보는 접어두고 환경쪽으로 눈을 돌려보자.우리는 홍수로 인해 매년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지난해에도 제방붕괴와 곳곳의 산사태 등으로 아까운 인명과 수많은 재산을 '재해'에 앗겨 버렸다.
우리의 주식(主食)인 쌀을 생산하는 논이 이러한 재난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근 농업진흥청의 엄기철·윤성호 박사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계량화 평가'라는 논문을 통해 우리 농업의 다양한 환경적 기능을 수량화,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논둑이 절묘하게 홍수조절기능을 수행, 거대한 댐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
홍수시기에 논 1ha가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양은 2천378t가량. 이를 우리나라 전체 논면적인 116만3천ha에 적용하면 1.5억t을 저수하는 춘천댐의 18.5배인 27억7천t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양이라고 주장했다.
논은 이같은 홍수조절 기능외에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물의 '보급창'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논에 흘러 든 물의 55%는 배수를 통해 하천으로 유입되고 나머지 45%는 지하수로 저장돼 매년 54억5천t의 물이 순환되고 있다.
논의 기능은 또 있다. 논에 저장된 물이 증·발산되면서 대기의 온도를 낮추는 에어컨 역할과 함께 무수한 산소를 공급한다.
논에서 벼 재배로 방출되는 산소의 양은 1ha당 연간 9t. 이를 전체 재배면적으로 따지면 매년 1천28만t의 산소를 우리에게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굴뚝산업인 2차 산업은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지만 1차 산업인 농업은 우리에게 천문학적 수치의 공익적 가치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중의 대목.
논은 식량안보의 첨병이며 환경파수꾼이다. 새해에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농업관이 똑바로 서고, 우리의 생명줄인 '농업창고'가 제대로 운영되기를 기대한다.
다시는 성난 얼굴의 농민들이 농기계를 몰고 거리로 나서지 않고 휘파람불며 들판으로 달려 갈 수 있도록….경제회생, 따지고 보면 잘 살아 보자는게 아닌가?
먹거리를 창출하고 환경적 기능이 다양한 논농사를 가벼이 봐서는 절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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