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희망을 연다인터넷사업가 된 퇴출은행원

입력 2001-01-02 12:02:00

"얼굴 찌푸리고 실의에만 빠져있으면 누가 도와줍니까. 우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추스리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실직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사업 의욕에 불 타 있는 장종태(42) 케이알라인 대구지사장. 한 인테넷 전용선 업체의 대구 책임자로 뛰고 있는 그는 전 대동은행 차장 출신이다. 현재 모습은 그럴듯 해보이지만 그에게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82년 대학졸업과 함께 은행원의 길로 들어선 장씨는 기업은행을 거쳐 창립 멤버로 대동은행에 입사, 비서실, 수신담당, 홍보실, 지점 차장을 지내며 지점장을 바라볼만큼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런 그에게 남의 일로만 여겼던 실직이, 98년 6월 대동은행 퇴출함께 덮쳐 왔다. 갑자기 세상에 내동이쳐진 것 같은 장씨를 반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죽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캄캄한 굴속같은 나날이었지요. 퇴직금 3천여만원과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지만 해볼 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노동청의 실업급여를 받으며 그렇게 반년을 보내고 나서야 '이래서는 안되겠다. 일단 부닥쳐보자'는 생각이 불쑥 솟구쳤다. 이때부터 그는 고향 친구가 운영하는 섬유회사 전산업무에 매달려보기도 하고 한달동안 속성학원을 운영하다 그만두기도 했다. 은행 홍보실 경험을 내세워 대구시청 공보사무관 공채에도 응시해봤다.

옛 거래처인 섬유업체 사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봉급도 없이 컨테이너 적재작업을 비롯해 섬유수출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땀맛을 느꼈다. 이렇게 시작한 원사 가공무역업을 1년 동안 꾸려오면서 노하우도 쌓았고 어느정도 사업의 물미도 텄다. 장씨는 "이때부터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장씨는 몸으로 부딪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7월부터 인터넷 전용선업체인 (주)케이알라인(Kr Line) 대구지사장을 맡아 비교적 단기간에 전국 800여 가입자를 모았다. 당초 3명이던 직원이 6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11월 '벤처 중소기업'으로도 지정됐다.

장씨는 "실직자들은 집안에만 있을 게 아니라 단정하게 차려입고 주변 사람들을 계속 만나라"면서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듣고 정보를 모은 뒤 꼭 하고 싶은 일이면 무보수라도 선뜻 찾아가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는 "요즘엔 실직과 취업이 구분이 없을 정도로 경제상황이 급변하는만큼 일거리가 없다고 투정하기보다는 몸으로 부대끼는 과감성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실직의 아픔속에 태어난 새내기 사업가의 눈길에서 희망이 엿보였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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