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博士 '인플레시대'

입력 2000-12-27 00:00:00

우리나라에도 위만(衛滿) 때부터 '박사'가 있었다. 그러나 지방장관의 직책명이었고, 교수의 성격을 띤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고구려에는 372년(소수림왕 2년) 태학(太學)이 설치돼 태학박사를 뒀고, 신라에는 682년(신문왕 2년)에 둔 국학(國學)이라는 교육기관에 박사(교수)가 있었다.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670년)에 백제 박사들이 열도로 건너가 건국을 도운 사실은 일본 왕도 인정하는 역사다.

옛날 박사들의 품계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고려시대엔 국자감(國子監)에 정2품의 국자박사 2인, 종2품의 태학박사 2인과 정8품의 사문박사.서학박사.산학박사를 2인씩 두었다. 조선시대에도 정7품의 박사를 성균관(3).홍문관(1).규장각(2) 등에 뒀을 정도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은 극심한 '박사 인플레' 시대다. 우리나라의 어떤 종교인은 80여세로 타계할 때까지 명예학위가 대부분이었지만 120개가 넘는 박사학위를 받은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2001년부터 10년간 배출되는 국내 이공계 박사 학위 취득자 3만9천800여명 가운데 9천700여명이 연구개발 분야로 진출하지 못할 전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초과공급률이 44.3%나 되는 이학계의 경우 생물 52.4%, 물리 52%, 화학 43.1%로 일자리가 크게 부족하게 되며, 공학계에도 섬유 41.5%, 금속재료 38.9% 정도 공급이 넘칠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서울대가 배출한 인문학 박사 중 70%가 취업을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공계의 박사 연구인력 수급 불균형도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다양한 사회 진출 통로 마련 등 다각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으며, 노동시장을 감안한 박사 배출 인력도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각 분야의 전문 인력인 박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은 국가의 발전과 경쟁력을 높여 준다는 점에서도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향학열에 부모의 교육열이 에스컬레이트돼 최고의 학력을 지녀야만 신분 상승과 출세길이 열린다는 발상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벌써 그런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이지만, 고급 두뇌와 최고의 전문 인력이 제자리에 놓일 수 없게 된 현실을 과연 어떻게 풀이해야 좋을지, 답답해지기도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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