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위해 교통순경역 자처

입력 2000-12-27 00:00:00

26일 오후 1시 쯤 대구공고 네거리에서 칠성시장 방면으로 좌회전을 위해 신호를 대기 중이었다.

칠순에 가까워 보이는 한 할머니가 파란불 신호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어야할 만큼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있어 할머니는 8차로 도로에서 절반을 넘지 못했지만 횡단보도 신호는 빨간불로 바뀌었다.

이 때 칠성시장 쪽에서 신암지하도 방향으로 우회전하려던 한 영업용 택시는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지나는 것을 보고 뒷차들이 앞서가지 못하도록 횡단보도 앞에서 계속 정지해 있었다.

그것도 잠시 경북대 방면에서 신암지하도 방향으로 직진 신호가 떨어졌다. 신호대기 중이던 자동차들이 한꺼번에 횡단보도 쪽으로 몰려왔고 가뜩이나 몸을 가누지 못하던 할머니는 횡단보도 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자동차는 할머니를 피해가기 위해 차선을 급히 바꾸고 경적음까지 울리며 차량 운행에만 열을 올렸다.

신암지하도 쪽에서 칠성시장 방향으로 좌회전을 준비하던 나로서는 병약한 할머니를 안타깝게 지켜볼 뿐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었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봐 잔뜩 긴장해 있던 순간 우회전 끝 차선에서 뒷차가 앞서 가지 못하도록 할머니를 지켜주던 영업용 택시기사가 급히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택시기사는 마치 교통순경이 된 듯 횡단보도 중간으로 나가 수신호로 직진하던 차량들에게 할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손짓을 보냈다. 한 손으로 자동차들을 통제하고 다른 한 손으로 할머니를 직접 부축하며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도록 했다.

평일 점심시간 도심 한 횡단보도에서 불과 30~40초 사이에 일어난 작은 일이었지만 보는 이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는 장면이었다.

그냥 보고 지나쳤더라면 온종일 꺼림직했을 일을 따뜻한 인심으로 바꿔줬던 기사 아저씨.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연말에 병든 할머니를 돕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뭉클했다. 택시기사 아저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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