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대구 424번 시내버스 운전기사 이한영(36·대구시 달서구 용산동)씨의 아침이 분주해졌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서둘러 회사에 출근해야,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갈아입고 어린이 승객들에게 나눠줄 풍선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타 버스운전기사'. 지난 10일부터 산타복장으로 시내버스를 몰며 거리를 누비는 그에게 붙여진 애칭이다.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은 산타복장을 한 이씨를 보고 처음에는 낯선 표정을 짓다가도 '어서오십시요'하며 어린이 승객에게 건네는 풍선을 보고 이내 환한 미소를 짓고 만다. 버스를 내릴 때는 누구나 '수고하십시오'라는 정다운 인사 한마디를 던진다.
4년째 광남교통에서 424번과 750번을 교대로 몰고 있는 이씨. 그는 난폭운전, 불친절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버스운전기사의 이미지도 바꾸고 불경기로 굳어진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변신'을 궁리해냈다.
그는 칠성시장에서 산타 의상을 사고 수공예학원에 다니는 아내를 졸라 며칠 밤을 새워 풍선으로 꽃, 강아지, 마이크를 만드는 방법도 배웠다.
마침내 산타복장을 하고 버스에 오르던 첫날, 어색함도 잠시 승객들의 격려와 환한 웃음에 콧노래가 절로 났다. 이씨를 보고 '별난 사람'이라며 며칠 저러다가 그만두겠지 하던 주위 동료들도 그의 열성에 두손을 들고 말았다.
동료들도 이제는 20분 정도 쉬는 버스 종점 교대시간에도 풍선을 만드는 이씨의 손을 도울 정도다. 동료 임규탁(43·동구 지저동)씨는 "나보고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씨의 얘기는 슬금슬금 소문이 나기 시작, 지난 18일에는 하교길에 버스를 기다리던 2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평소 타던 시내버스를 마다하고 비교적 우회하는 이씨의 버스로 몰려들었다. 학생들은 "아저씨 멋져요"를 연발하며 껌이나 과일을 건네기도 했다.
이제는 배차시간이 어긋나 버스가 40여분 늦은 날에도 승객들은 웃는 얼굴로 버스에 오르는가 하면 굳은 얼굴로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관도 이씨에게 손을 흔든다.
이씨는 "빠듯한 살림이지만 큰 돈 들이지 않고 남에게 웃음을 주고 거리를 밝게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버스를 운전하는 동안 매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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