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선생님'이라는 호칭

입력 2000-12-21 00:00:00

어디가나 선배보다는 후배가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면서 '그동안 나는 분에 넘치는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았나?'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려지는 '선생님'이란 호칭때문이다. 의대를 간 덕분에 20대 중반에 이미 '의사 선생님'으로 불려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의과대학 교수, 개업의, 간호학과 교수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있어 '박선생' '박선생님'이란 호칭은 'OO엄마'라는 호칭만큼이나 친근하다.

얼마전 어느 가정대학의 원로 교수님을 찾아뵐 일이 있었다. "선생님, 저는 왠지 '교수님'이란 호칭에 거리감을 느껴 잘 쓰지 못하는데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습니까?"하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신의 은사님 한 분은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화를 내신다고 하셨다.

사실 '교수'라는 호칭은 직함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나에겐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초등학교때 은사님으로 6학년때 담임선생님이셨다. 당시만 해도 아들을 딸보다 더 귀하게 여기던 시절이었지만 선생님은 공부에 남녀의 구별이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내게 각인시켜 주신 분이다. 선생님은 졸업 후에도 오랜 세월동안 가끔씩 전화를 주시며 제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을 보여주시곤 했다. 게으르고 소심한 나는 문안인사 한 번 가뵙지 않았어도….

몇 년전에도 전화를 주셨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지…" 말씀하실때 나는 마음 속으로 대답했다. '예, 나쁘게 변하지 않을게요. 조심 조심 살겠습니다' .

선생님의 많은 제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선생님이 계시는 한 인생을 마구, 아무렇게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선생님을 닮아서 오랫동안 제자들 마음에 남아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경동정보대 평생교육원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