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최고 사퇴 안팎

입력 2000-12-18 14:55:00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의 사퇴선언은 조용하지만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다.

이미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사퇴를 치밀하게 준비해왔고 '전격성'을 통한 효과의 극대화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증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권노갑 최고위원이 자신의 핵심측근과 사퇴성명 내용을 최종 점검한 것은 17일저녁 7시께 서울 시내 S호텔에서의 저녁식사 도중이었고, 권 위원이 "발표하라"고 지시하자 곧바로 각 언론사에 그의 사퇴성명이 팩스로 전송됐다.

권 최고위원은 성명 발표직전 청와대 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 등에게 자신의 결심과 성명내용을 미리 알려주고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궁 수석은 권 최고위원의 사퇴 경위에 대해 "발표문에 다 담겨져있다"며 "거기에서 가감하면 그 분의 뜻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권위원은 이날 경기도 포천 소재 골프장에서 안동선(安東善)의원, 이해찬(李海瓚)의원 등과 함께 라운딩을 한 뒤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성명서 초안을 들고온 측근과 함께 담담하게 문안을 한줄 한줄 검토했다.

이어 가족에게도 자신의 사퇴결심을 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평창동 권 최고위원 자택에 돌아온 측근은 부인에게 이같은 사실을 전했으며, 권 최고위원의 부인은 담담하게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두번에 걸쳐 한숨을 내쉬는 등 침통한 분위기였다.

권 의원은 이어 술렁이는 동교동계 및 민주당 인사들을 뒤로 한채 모처로 잠적,사실상 정계은퇴나 다름없는 상황을 앞두고 다시한번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권 최고위원의 사퇴 선언 소식이 알려지자 평창동 자택에는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으나 서울 근교에서 쉬고 있는 권 위원과는 이미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이에 앞서 권 위원이 마음을 정리한뒤 이를 공식화하기 위한 준비에 나선 것은 발표 하루전인 16일 밤 11시께로 알려졌다.

권 위원은 이날 경기도 포천 소재 한 골프장에서 동국대 동문들과 운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시내 한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한 뒤 귀가, 밤늦게까지 대기하고있던 측근에게 "내가 대통령을 위해 살아왔는데 이렇게 해야지…"라며 사퇴결심을 처음으로 입밖에 꺼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0여년동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그가 현 정권의 '실질적인 2인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에앞서 골프장이나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주변의 궁금증에도 불구, 일절 자신의 거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볼 때 권 최고위원은 이미 사퇴결심을 굳히고 16일과 17일 연 이틀 교외에서 운동을 하면서 복잡한 심중을 마지막으로 최종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권 최고위원은 특히 16일 밤 자신의 사퇴결심을 측근에게 밝혀 마음의 준비를 시킨뒤 17일 오전 골프장으로 향하며 "내 마음을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할 수 있는용어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이에따라 평생 김 대통령 뜻을 따라온 권 최고위원의 정치역정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위해 측근들이 찾아낸 용어가 명심보감에 나오는 '순명(順命)'이었고, 이날 사퇴성명의 결정적 '함의어'로 사용됐다.

한편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의 '2선 퇴진' 발언이 터져 나온후 주변에서는 사퇴는 어불성설이며 일단 수습방안을 찾아야한다는 건의가 잇따랐고, 특히 부인과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 등 가족들은 억울하다면서 정치를 그만두자는 등 격앙된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권위원의 사퇴성명 작성 작업에 참여했던 한 측근은 "이번 사퇴선언은 권최고위원이 혼자서 내린 결정"이라며 주변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 아닌 본인의 '결단'이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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