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大卒 '단순노무직'

입력 2000-12-15 14:34:00

월급쟁이들이 다시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세상이다. IMF를 졸업했다던 게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그게 아니다. 더구나 그때는 어려운 고비만 넘기면 다시 좋은 세월이 오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다.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그런대로 참고 견뎌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살고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사는 '빈부 격차'의 양극화 현상도 그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월급쟁이 시인이 '눈뜨는 아침이 두려워집니다/어느 회사는 정원 30퍼센트를 줄이고/어느 회사는 명예퇴직에/권고사직으로 추가 감원이 있고/…이미 밀려날 사람의 살생부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일순간에 대자보처럼 붙여질/목숨들을 안고/살얼음 딛듯 하는 하루가/지난 세월보다 더 지루함을/어머니는 아시겠습니까'(김양수의 '대자보 또는 살생부')라고 절규하겠는가.

있는 사람까지 몰아내는 판에 새로 사회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다. 노동부의 '3/4분기 한국 고용 동향'에 따르면 대졸 취업자의 31%가 단순노무직에 취업했고, 절반 이상이 한달에 8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 구직자가 일자리 하나를 놓고 1.8명이 경쟁했지만, 전문대졸 이상의 경우 3.7명이 경쟁을 벌여 고학력자들의 '하향 취업'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같은 추세는 '정부 인턴사원'이나 세일즈 직원 모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 인턴사원은 3개월까지 근무하면서 월 50만원이 지급되지만 공고가 나가자 마자 전화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며, 월급 50, 60만원의 세일즈 직원 모집 때도 대졸자가 40% 이상이나 늘어났다고 한다. 더구나 지방대 출신들의 취업은 아예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다는 한탄이 쏟아질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다.

대학 졸업 자체가 취업의 보증수표였던 시대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다. 하지만 고학력자들이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자기 눈높이에 턱없이 못미치는 노무직이나 단순사무직에 취업하는 경우가 급증하는 것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풍부한 직무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정말 '뾰족한 수'는 없는 것일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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