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韓 통상압력 거세질듯

입력 2000-12-14 14:28:00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미국과 정치.경제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우리나라도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어떤 분야에선 새 행정부 출범 이전인 지금 당장부터도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 통상 분야

재정경제부 관계자들은 부시가 당선됐다고 해서 큰 정책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미국이 장기 호황을 누려온데 따라 이번 선거가 '경제 선거'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경제정책의 틀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통상분야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새 대통령이 통상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IMF 체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사정'을 봐줬지만, 이제는 통상압력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도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민주당은 노동.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데 비해, 공화당은 자동차 등 상품 분야에 관심이 크다는 점이 주목된다. WTO 등 다자간 협상에선 환경 등을 끌어 들여 괴롭히지 않겠지만, 두나라 간 쌍무협상은 괴로워질 것이라는 예고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자동차.농산물.지적재산권 등에서 시장 개방 등 통상압력이 거세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주요 기관의 전망은 다음과 같다△외통.산자부 = 부시 진영은 자동차.농산물 부문 수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하지만 철강 부문에서는 종전 보다 오히려 통상 압력이 감소될 것이다. 대북관계 등 한반도 정책 기류에 따라 통상 마찰의 강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무역투자진흥공사 = 부시 진영이 세금 감면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미국 기업들의 대외 경쟁력이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우리 기업들에겐 악영향이 될 수 있다.우리의 대미 수출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통상 정책과 미국의 경기라는 두가지 요소에 좌우된다. 부시는 의료부문 지원 의지가 강해 우리 의료기기의 수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양국간 교역에서 균형이 깨진 자동차 등 품목들에 대해 부시 진영은 통상 압력을 강화해 올 것이다. 전자.기계 제품은 교역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상대적으로 편안할 것이다. 철강은 거의 전 제품이 반덤핑 및 세이프가드 등 조치 대상이 돼 있어 더 이상 규제는 없을 것이다.

◇한미 관계

정권이 바뀐다고 대외정책까지 180도로 달라지지는 않는 미국의 전통이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공화당의 평가가 매우 좋기 때문에 한국과의 우호 관계는 더 돈독해지면 돈독해졌지 나빠질 공산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양국 관계에 밝은 한 소식통은 "특히 김 대통령의 개인적인 인기가 공화당의 공격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돼 왔다"고 주목하고, "돌출변수만 아니라면 현재의 우호적인 한미 관계가 새삼 긴장될 요인은 없다"고 봤다. 공화당이 클린턴의 대북 포용정책을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사정이 비슷한 한국의 햇볕정책은 제껴 놓았던 사실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중요한 안보 분야에서 대한 안보 공약 이행과 대량파괴 무기 사용을 비롯한 한반도의 무력 도발 방지 조치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미국 관계

큰 변화가 예고돼 있다. 대외 경제정책 연구원 홍익표 전문연구원은 "부시 스타일의 새로운 대북관계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 핵과 관련, 클린턴 정부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따라 현 상태 동결을 바랐지만, 부시는 핵 투명성까지 요구하고 있다. 미사일 문제도 클린턴은 경제적 보상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공화당은 이에 반대할 것이다.

부시는 여전히 북한의 태도 변화 여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 행정부에 입각할 것으로 보이는 대외정책 브레인 대부분도 대북 강경론자이다. 그는 오히려 대북 협상의 엄격한 상호주의 적용, 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 개발 위협 강경대처 등을 주장해 왔다.

부시의 대북한 정책 윤곽은 이미 지난 7월 말 채택된 공화당 정강에 잘 나타나 있다. 공화당은 남북대화에 대한 언급 없이 북한을 '국제사회 밖의 존재'라고 규정, 선을 그었다.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 노선에 반영될 것으로 관측되는 아미티지 보고서(99.3)도 "북한에 대해 외교적 주도권을 갖고 안보적 도전에 대처하며, 외교교섭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억지력을 동원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방미,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 등으로 어렵사리 조성된 북미 화해 움직임이 당분간은 경색으로 뒤바뀔 전망이다.이에따라 클린턴의 북한 방문 조차 불투명해졌다. 부시는 미북관계 개선도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 최소 6∼7개월 간은 북미관계 진전이 제자리 걸음을 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따라 "남북 관계까지도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홍 연구원은 전망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국민의 뜻을 수렴한 동맹국 대의 정부의 정책을 따른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입장"이라며, "따라서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의 대외개방을 유도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일단은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구나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강국들이 하나같이 '한반도 문제의 남북한 당사자 해결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마당에 미국이 갑작스런 대북 강경책으로 돌아서기에는 국제사회에서의 명분뿐 아니라 미국의 국익이라는 실리 면에서도 손해가 너무 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 관계

부시 당선으로 해빙기류를 타고 있던 남북관계에도 일단 경보가 울린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대북 포용정책을 채택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궤를 같이해 왔지만, 부시는 그런 클린턴을 비난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일단 부시 행정부가 급격하게 대북정책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우며, 적어도 6개월 정도는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새 외교정책 입안까지는 상당 기간이 필요하며, 부시라 하더라도 한국 정부의 입장을 가장 중시해야 하고, 이것이 미국 국민의 여론에도 부합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변화 속도에 부응해 한.미.일 3개국 공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고, 클린턴 정부의 포용정책을 대체할 만한 효과적 대안이 아직 없다는 점 등도 주목됐다.

그래서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부시 정부는 일단 외교정책의 지속성 차원에서 클린턴 정부 대북정책 골격을 유지한 뒤, 중장기적으로는 변화를 가미할 것이어서, 남북관계의 급격한 변화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종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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