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 이탈리아(1)-골깊은 지역감정

입력 2000-12-06 14:12:00

서양 문명의 고향 이탈리아. 피자.스파게티.칸소네의 고장.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른 유럽인들과 달리 우리와 많이 닮았다. 얼굴 모습은 다르지만 운전할 때 느긋하게 기다리는 법이 없다. 독특한 지방색으로 인한 지역 갈등은 우리보다 더 심하다드물게 우리와 같은 반도 국가라 해서 이미 주목 받아온 나라. 21세기 세계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서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매일신문 기자가 그런 고민을 안고 한달간 현지 취재를 다녀왔다.

편집자

로마를 떠나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 지역을 돌던 중, 문득 "이곳엔 통일된 국가는 있어도 통일된 국민은 없구나" 하는 느낌에 부닥쳤다.

"이탈리아는 지방색이 뚜렷해 북.중.남부로 구분되는 3개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외모도 차이가 나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 등과 인접한 북부인이 아프리카와 가까운 남부인보다 키가 크고 피부도 흰 편이죠".

남부 시칠리아 출신 아버지와 북부 밀라노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밀라노 인근에서 살고 있는 로베르토 트로바토(40) 변호사가 그런 점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자신은 남부 사람의 쾌활하고 밝은 성격과 북부 사람의 진지한 성격 등 양쪽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가 시칠리아나 나폴리에 출장갈 때마다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남부 사람들은 놀기를 좋아하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 "아침 6시 첫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고 하면 남부 사람들은 너무 일러 만나기 힘들다고 난처해 합니다. 일 얘기를 하다가 1시간도 안돼 커피 마시자며 하던 일을 멈추고, 점심식사는 3시간 이상 계속하는 게 보통입니다".

이처럼 대충대충 일하는 남부인을 '지중해 사람'이라 폄하하는 북부인들은, 그와 반대로 '일 중독증'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북부인과 남부인을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로 비유하기도 했다.

유쾌하게 떠들고 노래하기 좋아하는 남부인은 옷차림도 북부인보다 신경을 더 많이 쓴다고 누군가가 가르쳐줬다. 로마의 버스기사들 중에 미남이 많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남부인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일과 상황에 맞춰 제대로 옷을 차려 입고, 남에게 멋있게 보이려 애쓴다는 것. 기자가 만난 로마 출신 세르지오 오솔리니씨는 60대임에도 불구, 가죽잠바에 스포티한 바지를 입고 신형 피아트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흥겨운 음악에 손바닥 장단을 잘 맞추고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의 이같은 지역 차이는 경제 문제만 없었더라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현지 사람들은 말했다. 그러나 북부와 남부 사이의 극심한 경제적 격차 때문에 서로간 적대감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밀라노.토리노 등 세계적 공업도시가 즐비한 북부는 실업률이 5.7% 정도인 반면, 시칠리아.캄파니아 등 전통적 농업지역인 남부는 22.4%, 청년층의 실업률은 50%에 육박했다.

부모와 함께 직조 공장을 운영하는 체칠리야 테라니(24)씨는 "부유한 북부인이 많은 세금을 내 가난한 남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남.북부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주별 재정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북부동맹'의 움베르토 보시 당수는 "국부의 3분의 2는 북부에서 만들어 내는데도 세금은 남부에만 쏟아붓고 있다"며, "이는 더이상 용납할 수 없는 일" "우리의 부를 운영할 방도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학 회사를 경영하는 존 루까 아자리오(45)씨는 "일자리를 찾아 북부 공업도시로 이주한 남부인들이 노동자로 사회적 하층을 형성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남.북간 지역 갈등을 줄여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국토 전체를 통일한 적 없어 지역주의가 뿌리 깊게 고착됐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그 결과 이탈리아 사람들은 지금 로마 사람, 밀라노 사람, 시칠리아 사람 하는 식으로 따지기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같은 뿌리깊은 지방 근성은 '캄파닐리스모'(Campanilismo)로 불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어느 마을이나 중심에 있는 교회의 종(캄파닐레) 소리를 그 곳 주민들만 이해할 수 있다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했다.

로마의 한가운데 베네치아 광장에서 본 광경도 역설적으로 그런 문제의 한 반사현상으로 느껴져 왔다. 눈부시게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당이 그것. 그는 1870년에 이탈리아 통일을 이룬 사람이다. 그의 기마상이 광장 중앙에 우뚝 서 로마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것은 조국애, 리소르지멘토(국가통일) 운동의 정신 등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476년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래 1천400년 동안 여러 도시국가로 갈라져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이탈리아. 거기다 오스트리아.프랑스.스페인 등 외세의 침략과 탄압을 받아야 했던 당시 이탈리아인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짐작케 했다.

한국도 동.서간 지역 갈등 해소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더니, 이탈리아인들은 한결 같이 귀를 쫑긋 세웠다. 지역 이기주의와 국가통합의 원칙 사이에서 해법의 실타래를 찾는 일, 우리가 해내야 할 이 과업이 더 힘겹게 느껴졌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