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의 발명'이 지난 1천년 동안 인류문화에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발명으로 꼽힌다. 같은 기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도 이 활자를 1455년경에 발명해 세계사에 처음으로 출판물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한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서구 문명을 중심으로 본 관점일 뿐이다. 현존하는 인쇄물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은 704~751년 사이에 제작된 목판인쇄물이지 않은가. 우리의 인쇄 기술은 신라시대부터 보급,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인 1011~1031년 사이에 제작됐지만 몽골군 침입으로 1232년 소실됐다. 현존하는 대장경(국보 32호)은 1236년부터 1251년까지 완성했으며, 8만1천258판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목판인쇄물이다. 금속활자도 우리가 200수십년이나 앞서 있음을 1234년에 제작된 '고금상정예문'이 말해주고 있다. 우리 문화의 정수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멀티미디어 환생 1호'로 속세를 떠났던 700여년만에 '과거의 유산'에서 '미래 정신문화의 비전'으로 변신했다. 고려대 장경연구소가 7년간의 작업 끝에 경판 내용을 15장의 CD롬에 담은 '고려대장경 2000'을 내놓았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한역 대장경'인 이 CD롬은 경(經).율(律).논(論) 등 원본을 비롯 해제.불교용어 사전도 실었다. 고려대 장경연구소는 일반용.전문가용 CD롬 제작에 이어 앞으로 표점 작업, 한글 번역본 전산화, 다른 언어와의 통합 대장경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동국역경원도 36년간의 작업 끝에 '한글 대장경' 전 320권을 이달말께 선보일 움직임이어서 한국 불교 연구와 세계화.대중화에도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렇듯 선조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지만 꾸준히 발전시켜 오지 못한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이번 팔만대장경의 디지털화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어디서나 온라인상에서 검색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 성과가 그동안 국제적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고려 대장경의 위상을 크게 높이며, 민족적 긍지를 가지고 그 위대한 정신을 계승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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