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학년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 보름. 예년 같으면 모든 수험생이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에 들떠 있을 시기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수능시험이 워낙 쉽게 출제돼 변별력이 떨어짐에 따라 논술·면접의 중요성이 부각됐기 때문. 그러나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중앙집중화는 갈수록 심화돼 도시와 농촌 학생들의 분위기는 극심한 차이를 보인다. 수험생들의 일상을 살펴보면 대입제도의 문제점은 물론 현행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구의 모여고 3학년 이모양은 아직도 입시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능시험 가채점 결과 370점을 넘어 평소 모의수능시험 점수를 유지했으나 수능점수 인플레로 당초 희망했던 대학에 진학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 하지만 재수를 하려니 새로 바뀌는 제도 때문에 겁이 나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지금은 논술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학교에서 3시간 논술수업을 들은 뒤 점심을 먹고 논술학원에 간다. 학원에서 꼬박 3시간 이상 시달리고 나면 저녁에는 친구 3명과 함께 그룹 논술과외를 받는다. 매일 2, 3편의 논술문을 쓰고 나면 밤마다 파김치가 된다. 논술 준비에 어림잡아 100만원 이상이 들어가다 보니 식구들 보기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더 괴로운 일이다.
재수생 오모군. 지난해 경북대에 합격했지만 자퇴하고 봄부터 재수에 뛰어들었다. 모의수능시험 성적이 380점대를 웃돌아 수도권 대학 진학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막상 시험을 치르고 나니 모의수능 성적보다 10점 정도 떨어진 것 같아 3수를 결심했다. 올해는 수도권 대학에 배짱지원한다는 생각이다. 혹시 하며 2개 학원에서 논술수업을 듣고 있다. 내년 입시에서는 졸업생이 불리할 것 같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수능시험만 잘 치면 어떻게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 하나로 1년을 더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봉화고 3학년 정충식군은 논술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막막한 상태다. 이미 고려대 수시모집에 지원했다가 불합격의 고배를 맛봤다. 학교에서 특별한 논술지도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영문으로 된 지문을 읽고 답하는 형태의 시험을 치르고 보니 정시모집 논술은 걱정뿐이다. 수능시험이 끝난 후 국어선생님이 특별지도를 해 주지만 도시 학생들과 경쟁할 자신이 없다. 논술관련 학원은 물론 대도시 학생들이 수시로 듣는다는 특강은 꿈도 못 꾼다. 인터넷 논술 프로그램을 통해 각 대학의 출제경향을 파악하고 논술관련 참고서들을 보며 준비를 하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군을 비롯, 점수가 그런대로 나온 학생들은 대부분 하향안전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수능시험에서 200점대를 받은 봉화고 김정모군. 공부에 자신이 없어 일찌감치 제과·제빵 학원에 등록을 하고 전문대학 관련학과 진학을 준비중이다. 지난 10월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얼마전에는 제과기능사 실기시험을 치렀다. 김군은 제과·제빵관련 학과가 개설된 10여개의 전문대학 지원가능점수가 자신의 성적보다 훨씬 높지만 자격증 2개가 있으면 특별전형으로 진학이 가능해 여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농촌 지역 일반계 고교생 가운데 농사를 짓겠다는 학생은 거의 없다. 학비와 숙식을 모두 제공하는 농업전문대 진학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만 누구도 여기에 원서를 내려 하지 않는다는 게 교사들의 설명. 수능점수에 관계없이 입학할 수 있는 전문대도 여러 곳이라 농촌 학생들은 너나없이 대학 행렬에 달려드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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