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그리던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맞은 남측 이산가족들은 30일 새벽부터 일어나 설렘 속에 상봉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북에서 오는 남편 김중현(66)씨를 맞는 유순이(71.서울 양천구 신월동)할머니는 전날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 이날 새벽 4시에 일어나 국물 몇 모금으로 요기를 한 뒤 반세기만에 남편과 만날 것을 고대하며 머리 단장을 하러 아침 8시30분께 미장원을 찾아 나섰다.
평생 수절을 했던 유씨는 적십자사를 통해 받은 남편의 사진을 보고 "새 신랑의 얼굴이 그대로 있다"며 "선물로 금반지와 시계, 내의 등을 준비했다"고 말했다.쭛…경기여고 2년때 서울대 의료봉사활동에 참가했다가 연락이 두절된 누나 권순호(67)씨를 맞을 걸(60.서울 강남구 삼성동)씨도 "아버님(90)을 모시고 서울에 사는 다른 형제들에게 연락해 어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며 "누님을 잘 알아볼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책공대 강좌장인 하재경(65)씨를 만날 형 재인(74.전 서울대 의대교수)씨는 "형제끼리 만난다는 자체가 기쁘다"며 "여자처럼 엉엉 울고불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감정을 자제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작은 아버지인 기만(71)씨를 만날 운보 김기창(金基昶) 화백의 아들 완(52)씨는"어제 중환자실에 계신 아버님을 뵙고 '내일이면 작은 아버님이 옵니다'라고 전했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며 "가급적이면 북측의 동의를 받아 내일 아침께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측 이산가족 100명과 수행원 등 151명으로 구성된 방북단은 30일 오전 8시 10분께 김포공항 국제선 2청사에 도착, 간단한 출국수속을 마치고 항공기 탑승구 앞에 모였다.
이들은 50여년만의 만남을 기대하며 한결같이 상기된 표정으로 항공기 출발을 기다렸다.
이산가족 100명중 8명이 고령과 지병 때문에 휠체어에 의지, 주변을 안타깝게 했지만 정작 이들은 모두 가족상봉의 기대감에 기쁜 표정이었다.
북한에 살고 있는 누나를 만날 예정이라는 신형순(71) 할아버지는 "지난 4월 허리를 다쳐 2번 수술을 했지만 아직 다 낫지 않아 진통제를 맞고 떠나게 됐다"며 "한번 더 수술을 해야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고 말했다.
최고령자인 유두희(100) 할머니는 휠체어에 탄채 "어젯밤에 밤잠을 설쳤다"며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측 상봉단 단장을 맡고 있는 봉두완(奉斗玩)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는 공항 귀빈실에서 제2차 이산가족 방문의 의의를 담은 출발 성명을 발표했다.
봉 부총재는 성명을 통해 "우리 방문단은 이산가족 여러분의 혈육에 대한 애틋한 정과 남북간 평화와 화해, 협력을 염원하는 7천만 겨레의 꿈을 안고 형제 자매를 만나 여러분의 기대와 희망을 전하고 오겠다"고 밝혔다.
평양 순안공항의 기상 악화로 상봉단을 싣고 갈 대한항공 815편의 출발이 지연되자 대한항공측은 상봉단을 출국장내 통과여객 라운지로 이동시킨 뒤 간단한 다과를 제공했다.
설렘과 기대속에 상봉 전야를 뜬 눈으로 지샌 이산가족들은 상봉 당일인 30일 오전 일찍부터 '반세기만의 만남'을 고대하며 그 어느 때보다 밝고 상기된 표정이었다.
방북단 100명이 묵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호텔에서는 당초 예정시각인 오전 7시를 조금 넘겨 김포공항으로 향했고 서둘러 나오던 채훈묵(82) 할아버지가 넘어져 다쳐, 긴급히 병원으로 옮겨지는 불상사가 나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채씨는 호텔 출발 예정시각을 넘긴 오전 7시10분께 버스를 타려고 서두르다 호텔 현관에서 발을 헛디뎌 오른쪽 이마를 바닥에 찧는 바람에 눈썹부위가 2~3㎝가량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입었다.
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채씨를 부축해 대기해 있던 앰뷸런스에 태워 인근 중앙병원으로 긴급 이송하는 일이 벌어졌으나 의료진은 "상태가 심하지 않아 봉합수술만 받으면 공항에서 합류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32층 뷔페식당 라세느에는 오전 6시부터 잣죽과 쇠고기무국, 은대구구이, 너비아니 등 한식 식단이 마련됐다.
호텔측은 "고령자가 많은 점을 감안, 원기회복에 좋은 음식들을 마련했다"며 "모두들 식사를 거의 다 비울 만큼 왕성한 식욕들을 보였다"고 전했다.
방북단은 고령자가 많고 부상자가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바람에 출발예정시각보다 20분 정도 늦어진 오전 7시20분께 '환영 남북이산가족'이라고 적힌 버스 5대에 나눠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평양 철도관리국 축구선수 출신으로 아내와 자녀를 만날 석만길(85) 할아버지는 "내가 운영하는 과수원에서 딴 배로 만든 배즙 1박스를 준비했다"며 "남쪽에서 재혼한 아내가 선물을 꾸려줬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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