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안양 10년만에 다시 웃다

입력 2000-11-16 14:43:00

안양 LG가 새천년 프로축구 삼성디지털 K-리그 정상에 올랐다.정규리그 1위 안양은 15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부천 SK와의 챔피언결정(3전2선승제) 2차전에서 후반 곽경근에게 첫 골을 허용했으나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시킨 안드레의 동점골로 연장전으로 끌고 간 뒤 승부차기에서 4대2로 승리, 1차전 4대1 완승에 이어 2승을 따내 올해 그라운드의 진정한 승자가 됐다.

이로써 안양은 85년과 90년(당시 럭키 금성) 정규리그 우승 이후 통산 세번째이자 10년만에 왕좌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120분간 피를 말리는 싸움을 1대1로 마친 뒤 이어진 것은 승부차기.

부천은 첫 골을 터뜨린 '대들보' 곽경근과 아시안컵축구 국가대표 강철의 슛이 신의손 대신 투입된 연습생 출신 '신출내기' 골키퍼 정길용의 손에 어이없이 걸려 승부차기 스코어는 3-2가 됐다.

한상구의 실축에 이어 5번째 키커로 나선 안양 LG의 '브라질 용병' 히카르도는 침착하게 오른발로 슛을 날렸고 볼은 오른쪽 구석에 박히며 전광판은 '4-2'의 스코어를 선명하게 표시했다.

안양 응원단에서는 폭죽이 터졌고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한데 엉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2차전에서 승부를 마감하려는 안양과 3차전으로 승부를 끌고 가려는 부천의 대결은 전반부터 불꽃을 튀겼다.

안양은 최용수와 왕정현을 투톱으로 세우고 미드필더들이 공간에 떨어뜨려주는 긴 패스로 골문을 노렸고 부천은 곽경근, 샤리, 이성재로 삼각편대를 구성, 정교한 패스로 상대 수비진을 헤집었다.

전반은 두 팀 모두 득점이 없었으나 후반은 사정이 달랐다.

먼저 환호성을 올린 쪽은 부천이었다.

부천은 후반 14분 수비수 조성환이 상대진영 깊숙이 공격에 가담,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볼을 뛰어주자 안양 골키퍼 정길용이 펀칭하기 위해 뛰쳐 나왔으나 미치지 못했고 곽경근이 머리로 빈 골문에 밀어넣었다.

안양으로서는 주전 골키퍼 신의손이 부상으로 빠져 단신인 183㎝의 정길용을 기용한 것이 패착인 듯 했고 부천은 공중볼에 이은 곽경근의 헤딩 작전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안양은 후반 31분 페널티지역 외곽 왼쪽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정광민과 히카르도가 골키퍼의 시야를 가려준 사이 안드레가 찬 볼이 부천 골문 오른쪽에 박혀 1대1 동점을 이루었다.

안양은 9분 뒤 최용수와 교체투입된 쿠벡의 절묘한 문전 센터링을 정광민이 헛발질하며 역전기회를 놓쳐 버렸고 경기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안양 우승 원동력은

안양 LG가 한국프로축구 정상에 오른 데는 과감한 투자와 혁신적인 선수단 운영, 조광래(45)감독의 탁월한 전술, 선수들의 합심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3년 연속 최하위권에 머물렀던 안양 LG는 올 시즌 목표를 한국프로축구 정상정복으로 잡고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말 9억여원의 돈을 풀어 최태욱, 박용호, 김병채, 최원권, 김동진 등 고교졸업 예정인 미래의 스타플레이어들을 받아들인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현재 이들은 이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참가하느라 챔피언결정전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정규리그중에는 전력의 한 축을 맡았었다.

취약한 포지션인 골키퍼를 보강하기 위해 한국축구사상 처음으로 러시아출신인 신의손(40)을 귀화시킨 것도 안양의 공격적인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신의손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오른쪽 무릎을 다쳐 교체됐고 2차전에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거의 정규리그 전경기에서 골문을 지키며 안정된 수비를 유도했다.안양은 또 한국프로축구사상 최고이적료(120만달러)를 지불하고 유고용병 드라간을 영입했고 드라간이 7월 부상으로 중도하차하자 곧바로 체코용병 쿠벡을 스카우트하는 등 우승을 향한 집념을 불태웠다.

안양은 승패에 따라 돈을 지불하는 승리급 제도를 도입, 선수들의 의욕을 부추겼다. 10개구단중 처음으로 경기를 이겼을 때 많게는 300만원의 보너스를 줌으로써 선수들의 최고 기량을 유도했다.

98년 12월부터 팀의 사령탑으로 부임, 두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조광래감독은 4-4-2, 3-4-3, 3-5-2 등 상황에 맞는 전술을 두루 활용 , 최상의 전력을 이끌어냈다.

선수들이 이기주의에서 벗어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원동력이었다.

최용수의 경우 지난해까지 '골'에 집착했으나 올 시즌에는 무리하게 슛을 하기보다는 정광민, 김성재 등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도우미'를 자처, 공격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화합무드 조성에 앞장섰다.

---조광래감독 우승소감

"2년간 끊임없이 기술축구를 고집한 감독을 믿고 따라준 선수들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15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삼성 디지털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부천 SK를 누르고 2승, 정상에 오른 조광래 안양 LG 감독은 감격의 눈물과 함께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조광래 감독은 이어 한해 우승하고 이듬해 몰락하는 팀이 아닌 오랜 기간 팬들의 사랑을 받는 명문구단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조감독과의 일문일답.

-소감은

▲10년만의 우승이라 너무 기쁘고 그간 수많은 스트레스 속에서도 나를 믿어준 선수들, 열띤 응원을 해준 안양팬들과 시민들에게 감사한다.

-오늘 경기를 평가해달라.

▲전반 부천의 강한 프레싱에 눌려 힘들었다. 후반에 히카르도와 쿠벡을 투입해 승부수를 던졌지만 여러번 찬스를 못 살렸다. 최용수와 왕정현은 체력이 많이 떨어져 교체할 수 밖에 없었다. 승부차기에서 선방한 정길용의 공이 크다.

-우승의 원동력은

▲거듭 말하지만 정교한 패싱과 다양한 수비전술 등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했던 것이 결실을 맺었다. 안드레, 쿠벡 등 올해 영입한 외국인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역할을 을 해 줬던 것도 전력상승에 큰 도움이 됐다.

-수훈을 세운 안드레를 평가한다면

▲경기를 읽는 눈이 탁월하고 패싱, 킥 모두 최상이다. 국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라 생각한다.

-FA컵 및 내년 시즌에 대해

▲FA컵은 청소년대표팀에서 돌아오는 선수들과 2군선수들까지 전력에 포함시킬것을 고려중이다. 올해 외국인 선수영입에 성공, 전력을 끌어올린 만큼 새로운 용병수입은 없을 것이다. 단지 최용수가 일본에 진출한다면 스트라이커 1명 정도는 영입할 가능성이 있다.

---연습생 GK 정길용 '스타탄생'

신의손(40)이 부상당하는 바람에 졸지에 글러브를 끼고 안양 LG 골문을 지킨 정길용(25)은 순발력이 뛰어난 차세대 수문장.

182㎝로 골키퍼로서는 비교적 단신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지만 이날 승부차기까지 간 빅게임에서 두 번이나 킥을 막아 신의손을 방불케 하는 실력을 펼쳤다.

정길용은 98년 광운대를 졸업한 뒤 프로팀으로부터 스카우트제의가 없어 실업팀 할렐루야행을 택해야 했던 '그저 그런' 선수였다.

프로 진출의 꿈을 접지 않고 있던 정길용에게 프로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원종덕, 백민철 등 두 명의 골키퍼를 영입한 조광래 감독이 못내 마음이 놓이지 않은 듯 정길용에게 연습생으로 입단할 것을 제의했던 것.

이에 따라 정길용은 연봉 1천200만원, 즉 월 100만원의 헐값에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정길용은 동계전지훈련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신의손에 이어 팀내 2인자가 됐고 이후 신의손으로부터 직접 지도받으면서 기량을 가다듬었다.

만년 벤치신세를 질 것 같았던 정길용에게 기회가 온 것은 지난 9월.

신의손이 오른쪽 무릎을 다쳐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글러브를 끼게 된 정길용은 천금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활약했고 정규리그 4게임에서 4골밖에 내주지 않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아디다스컵대회에서는 2게임에서 5실점해 아직은 미완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서울토박이로 상계초-재현중-강동고-광운대를 거치면서 줄곧 골키퍼만 맡았다.

앞으로 공중볼을 다툴 때 위치선정능력을 보완하면 타고난 순발력을 바탕으로대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정재곤(51)씨와 오창옥(49)씨 사이의 2남중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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