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김과 드러냄 '또 하나의 얼굴'은 인간에게 왜 필요했을까

입력 2000-11-14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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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즉 가면은 거의 전세계에 걸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현상이다. 탄생이나 죽음과 관련된 의식에서도, 통과의례인 성인식과 할례식에서도, 치료과정이나 해가 바뀌거나 계절이 바뀌는 것을 기념하는 의식에서도 가면이 등장한다. 죽은 후 자신의 머리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가면을 만들어 무덤 속 미라 위에 함께 매장했다. 왜 인간에게는 가면이 필요했을까?

존 맥 등 영국의 예술사가, 인류학자, 박물관 연구원 등 8명의 학자가 함께 쓴 '마스크, 투탄카멘에서 할로윈까지'(윤길순 옮김,개마고원 펴냄)는 유럽 아프리카 멕시코 일본 등 세계 각국의 가면 사례를 소개하고 가면의 용도와 의미, 가면전통을 사회문화사적인 시각에서 살펴본 연구서다. 특히 가면에 관한 광범위한 문화 유형, 가면의식, 가면을 씀으로써 일어나는 개인적.사회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가면은 대부분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집트에서는 가면이 얼굴을 바꾸거나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면 쓴 사람을 신과 같은 존재로 격상시키기 위한 매개물이었다. 죽은 뒤 찾아올 불가항력적인 위기의 순간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신적인 능력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가면이 필요했다. 사라진 육체를 대신해 영혼이 부활하면 가면이 그 영혼에 새로운 육체를 제공해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반면 고대 그리스 로마의 가면은 액면 그대로 가면이었고, 후기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순전히 세속적인 목적으로 가면의 장식적 효과를 이용한 경향도 나타났다. 가톨릭이 지배적인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에서는 종교적인 연례행사 때 가면을 쓴다. 죽은 사람들의 행렬인 유령 사냥이나 할리퀸, 사육제와 같은 행사에서 가장행렬이 벌어진다. 이때 등장하는 가면은 위험한 힘이 깃들어 있는 것에서부터 외설스럽거나 우스꽝스러운 것까지 매우 다양하며 각기 독특한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개인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상징적인 인물이나 극중 인물에게 명확한 형태를 부여해 고정된 유형을 가면을 통해 창출하기도 한다. 따라서 가면은 구조화되고 예측 가능한 극적인 서사를 되풀이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물인 셈이다.

'숨기기'와 '드러내기'라는 양면성을 가진 가면. 가면이라는 말에는 모습을 바꾼다거나 감춘다고 하는 인간의 행위가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인간이 가면을 쓰는 행위는 가면을 쓰는 사람의 '변신' 또는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즉 가면을 씀으로써 신과 같은 존재로 격상되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인물로 변하기도 한다. 결국 가면의 세계는 현실의 직접적인 반영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또 다른 형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면은 '얼굴에 대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가면에는 단순히 자신의 정체를 감추거나 변장의 수단을 뛰어넘어 삶과 죽음, 각종 통과의례에 대한 인간의 내세관과 영원, 삶의 양식이 투영되어 있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각 장을 장식하고 있는 130여 컷의 가면 사진은 세계의 가면풍습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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