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옛땅을 가다-(17)유적 파괴 심각

입력 2000-11-06 14:19:00

지난달 우리 정부는 북한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보존을 위해 10만달러를 유네스코를 통해 기부했다. 유네스코는 현재 북한의 고구려 고분벽화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북한 역시 상당한 애정을 갖고 우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구려에 대한 문화유적 보존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중국에 있는 고구려 문화유적. 요녕(遼寧)성, 길림(吉林)성, 흑룡강(黑龍江)성 등 동북3성 일대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급속도로 훼손되고 있다.

고구려 고분이 가지는 중요성은 세계가 인정 하지만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의 하찮은 역사'로 천대받고 있다. 관리의 손길이 미치는 유적은 집안(集安)의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 장군총과 벽화가 있는 고분들, 환인(桓仁)의 오녀(五女)산성 정도.

중국 당국은 1961년과 1982년 대대적인 고구려 유적 보존사업을 통해 국가중점문물보호지구(국보)나 성(省)급 문물보호지구(지방문화재)로 지정하는 노력을 했지만 지정만 돼 있을 뿐 후속조치는 사실상 없는 상태다.

현재 집안지역 6대 고분군 가운데 그런대로 정비가 돼 있는 곳은 환도(丸都)산성 밑의 산성하고분군.

그러나 지난 94년 대대적으로 복원을 하면서 원형을 살리기 보다는 무덤이 흘러 내리지 않는데 치중했다. 일부 고분은 시멘트를 발랐을 정도. 무덤 주위도 콘크리트를 했다. 아예 7층계에 이르는 무덤 전부가 시멘트로 단장된 것도 있다.

유적 실태조사를 나왔다가 취재진과 만난 송찬섭 한국방송대 교수는 "차라리 훼손된 상태 그대로 뒀다면 훨씬 나을 뻔 했다"고 중국측의 졸속 복원을 나무랐다.

여기서 1km쯤 떨어진 환도산성 궁궐터. 이곳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은 울분을 터뜨린다고 한다. 왕궁터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밭을 일구고 퇴비를 뿌려 놓았다. 중국인들의 고구려 역사인식이 이 정도인가 싶었다.

그런데도 중국의 눈치 때문에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한다. 우리 역사의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는 고구려를 이렇게 남의 역사와 남의 일로 팽개쳐버려도 되는 것일까.

집안 시내에 있는 국내성 성벽. 10년전만 해도 북쪽 벽은 많은 부분이 원형 상태로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밑층 부분 일부만 남아 있다. 이것도 관리가 안돼 수년내에 완전히 허물어질 전망.

국내성은 고구려의 최장기간동안 수도였는데도 중국당국은 국보급이 아닌 성급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있다. 국보급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는 판에 성급 정도는 말이 문화재지 그냥 주민들의 생활터전이다.

서대묘나 마선향 고분군 근처 마을 집과 밭들의 경계는 모두 인근 고분에서 가져온 돌들로 만들어졌다. 서대묘 인근에서 만난 한 조선족 농부는 "시정부에서 공사를 할 때도 이 무덤의 돌을 갖다 쓴다"고 말했다. 더욱이 서대묘는 국보급 문화재인데도 민관이 내남없이 파괴에 앞장선다.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게 더 문제다.1천500년전 서역 진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심양(瀋陽) 인근 백암성. 성의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지만 파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마을 담벽은 모두 성에서 옮겨온 돌들. 북서쪽 방면에는 차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무너뜨려 놓았다. 이 성벽에서 불과 200m쯤 떨어진 석회광산에서는 채굴이 한창이다. 하루 수십번씩의 발파작업이 진행된다.

불과 20여년전 1만2천여기에 달했던 집안지역 고분은 현재 7천여기만 남아 있는 상태. 서일범 중국 연변대 교수는 "10년만 지나면 또 절반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름 없는 많은 무덤들 뿐만 아니라 광개토대왕릉, 천추묘 등 국보로 지정된 고분위에도 가시나무, 산딸기나무 등 잡목들이 우거져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광개토대왕릉 어깻죽지 부근에는 대형 전신주 2개가 서 있었다. 이것을 대구의 한 사업가가 중국측에 거액을 지불하고 지난 5월 이전했다. 광개토대왕비도 경남 진주의 사업가가 주변을 정리하고 담장을 만들어 겨우 급속한 훼손을 막은 상태.

무덤이나 성곽 뿐만 아니라 벽화의 훼손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집안의 오회분 오호묘 벽화는 전문 지식이 없으면 윤곽 파악도 어려울 정도.

발굴된 유물들도 어디서 관리 되는지, 어떻게 보존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심양 인근 석대자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이나 오녀산성에서 나온 대형 주춧돌 등은 박물관으로 간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서길수 서경대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 정비와 보존 대책에 대한 종합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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