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실험
넓은 의미에서 관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도구를 쓰지 않는 관찰이다. 예를들면, 육안으로 무엇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관찰이라고 하면, 고대·중세 천문학을 쉽게 연상하게 된다. 우리의 감각 기관에 어떤 매개물의 도움없이 직접 들어오는 감각과 지각 내용을 보통 관찰이라 한다. 다른 하나는 도구를 쓰는 관찰이다. 우리는 육안으로 세포를 볼 수 없지만 현미경을 쓰면 보게 된다. 현미경을 쓰는 것과 같은 관찰은 일종의 실험이다. 도구를 써서 대상에 어떤 행위나 조작을 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일반적으로 관찰은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조작이 가해지지 않는 경우를 말하고, 실험은 조작이 수반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실험의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우리가 지구 내부의 깊숙한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술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일정 깊이 이상 들어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지구 내부의 일정한 구역에 대해서 도구를 쓰지 않는 관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실험을 통해 지구의 내부를 탐구할 수 있다. 전형적인 방법은 지진파를 이용하는 경우이다. 지진은 그 규모가 클 경우 인간에게 치명적 피해를 안겨 준다. 그러나 적절한 규모의 지진은 그 지진이 일어난 그리고 거쳐 온 지역의 지각 내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과학자가 실제로 지각 안쪽으로 접근하는 데에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진은 지구 물리학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지구 물리학자가 지각 안으로 바로 들어가 원하는 깊이에서 충분히 관찰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지각 안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커다란 제약이 따른다. 그 제약이란 너무 많은 기술적 한계가 존재하며 시간적·경제적 부담 역시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외의 다른 방법이 필요하며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진파를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각 아래의 일정한 곳에서 생겨난 지진파는, 진원(震源)을 떠나 여러 방향으로 전파되어 지각 곳곳에 도달하며 특정한 곳에 설치한 지진계는 지구 내부를 거쳐 온 지진파를 탐구하여 정보화하게 된다.지진은 자연 상태에서도 일어난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판구조론에 따라 지진이 어느 지역에 일어날 가능성이 많거나 적거나를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특정한 시공간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 물리학자가 서울 인근에 있는 특정한 지역의 지층 구조를 밝히려 할 경우, 그 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보다 더 한가로운 경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인공적으로 지각의 일정 깊이에 폭약을 설치하여 그때 발생하는 파를 기초로 원하는 지역의 지각 안쪽의 상황에 대해 탐구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관찰과 실험이 뚜렷한 차이를 갖는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지진은 원래 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미 존재하던 지진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진을 '만들어서' 탐구하는 것이다. 인공 지진은 그 지진을 발생시킨 탐구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처럼 과학자는 관찰을 위해 현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해 주는 것 바로 실험이다.
위에서 일단 실험과 관찰을 나누어 이해하려고 했지만, 어떤 측면에서 볼 때는 이 두 가지가 절대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관찰을 실험의 특수 경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직접적 관찰은 대상에 대한 조작과 측정 도구의 개입을 최소화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적 관찰도 사실은 몇몇 매개를 이용한다. 시각 작용의 경우를 고려해 보면, 우리 눈은 특정 진동수를 갖는 빛의 영역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시각 기능은 정상인의 경우 제대로 작동한다. 따라서 직접적 지각 활동은 좀더 복잡한 실험의 특수한 경우로 볼 수 있으며, 두 경우는 원리상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과학자들은 직접적 관찰보다는 오히려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쓰는 관찰을 전형적인 의미의 관찰로 본다. 현대 과학에서 관찰은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천문학적 대상에 대한 직접적 관찰에 그치지 않는다. 망원경을 써서 하는 관찰이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망원경도 반사 망원경, 전파 망원경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뿐더러, 각 범주 안에서는 다시 여러 유형의 망원경이 존재할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상이 이미 존재하며, 대상에 조작이 가해지지 않았으나 매체를 쓴 경우이다. 이 경우 '매체'를 썼다는 의미에서 직접적 관찰 개념으로 볼 수 없으나 '조작'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는 실험이라기보다는 관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실험의 유형에 대해 좀더 살펴보고 관찰 유형과의 비교를 통해 어떤 특징이 공유되는지를 살펴보자. 어떤 특정 원소에 염산을 부어 그 때 얻게되는 생성물을 연구하는 일은, 조작을 가한다는 의미에서 실험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은 관찰적 영역에서 일어난다. 물론 이 때 생겨나는 기체나 기타 화합물을 모두를 인간의 감각 기관만으로 포착해 내기가 어려우며, 도구를 써서만 확보해 낼 수 있다는 면에서는 실험의 성격이 강하다. 식물 생리학의 주요 연구 재료인 콩나물에 일상적 태양 광선이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광선을 쬐거나 빛을 시간적으로 혹은 광도(光度)를 조절하여 쪼여 주면서 콩나물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실험이면서 관찰에도 가깝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은 순수한 자연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빛을 쬐어 주는 조작을 가했기에 실험의 성격이 두드러지면서도 일상적 관찰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이미 존재하는 대상에 조작을 가하는 종류의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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