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지금 일본은

입력 2000-10-28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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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일본의 어느 공직자 모임에서 강연한 일이 있다. 그들이 요청해 온 대로 '한국에서 본 일본의 현상(現狀)'이란 연제로 두 시간을 술회했다.일본 교토를 중심으로 조직된 '한자능력 검정협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연말이 되면 이 협회에서는 한해의 일본 사회상을 반영하는 '올해의 한자'를 제정한다. 수만 명의 일본인들이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이에 참여하고 있다. 한해 동안의 사회 모습을 점검하고 반성하며, 이를 새로운 교훈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그 동안 제정된 한자를 살펴보면, 95년 고베 대지진이 있었던 해는 '震'이었다. 0-157 식중독으로 일본 국민들이 전전긍긍했던 96년은 '食'이었다. 97년 일본의 경제가 어려움을 만나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연쇄 도산했을 당시는 '倒'였다. 카레 독극물 사건과 관료의 부패가 드러났던 98년은 '毒'이었다. 그리고 세기말을 맞은 작년 99년에는 이바라기현의 핵 누출사고와 어린이 납치 살해사건 등이 반영되어 '末'로 결정되었다. 그 후보로는 '亂', '崩', '核'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들 한자는 하나같이 어둡고 부정적이고 퇴영적인 일본의 현실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말 IMD(국제경영개발원)가 발표한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아직도 무역수지 흑자액과 외화 준비액에서, 노동 윤리와 국민의 문자 해독률에서 세계 1위를 점유하고 있고, GDP와 연구개발비의 규모에서도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검소하며, 정확하고 부지런하다.

필자는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는 더욱 밝고,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올해의 한자'가 채택되기를 기대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홍사만(경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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