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내몰린 '실직 그림자'

입력 2000-10-27 15:09:00

우방에서 6년 근무하다 이달 초 퇴사한 김모(38)과장. 부도후 3개월째 월급도 못받다 나오면서 남은 거라곤 아파트분양 대출빚 2천여만원과 카드대출빚 300여만원. 하루 아침에 생계가 막막하고 옮길 직장도 없다. 고민끝에 카센터와 보험대리점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전 재산인 24평 아파트를 전세주고 창업자금 5천만원을 마련했다. 낮에는 보험회사에서 대리점주 교육을 받고 밤에는 학원에서 자동차정비일을 배우며 의욕을 살려보지만 여전히 막막할 뿐이다. "큰 건설회사 다닌다고 그런대로 여유를 부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는데…. 날씨는 추워지고 앞날이 캄캄합니다"

부도로 2년전 정든 회사를 떠나야 했던 보성 전 직원 이모(41)씨.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40이 넘은 자신을 받아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그 잘나가던 건축기사1급 자격증도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그런 이씨에게 '일확천금'이 유혹하기 시작했다. 집을 담보로 5천만원을 빌려 주식에 손을 댔다.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고 2년만에 7천만원을 날렸다. 마침내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결국은 거리로 나 앉을 판이다.

전 삼우건설 과장 최모(42)씨는 실직후 건설업, 광고기획사, 유통업에 차례로 뛰어들며 살길을 찾아 발버둥쳤지만 그 때마다 참담한 실패뿐이었다.

대구의 주택건설업은 한때 전국에서도 잘 나가는 인기직종이었다. 그 직원들이 부도회오리가 휩쓸고간 이후 지금은 대량실직사태속에 가장 고통을 받고 있다.

대구상공회의소에 따르면 96년 대구지역 주택건설업 직원들은 5만5천700명이었으나 IMF사태속 불과 2년만에 2만4천700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99년 3천명에 이어 올 해도 우방 부도를 겪으면서 실직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회사에 남은 직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이고, 나간들 희망도 없다.

우방 관리팀 정모(34)대리는 파산직전이다. 지난 6월 3천만원을 빚내 5천만원짜리 18평 아파트를 마련했으나 회사가 부도나면서 월급이 나오지않아 매달 대출이자 30만원도 못갚는 처지가 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갈 데도 없고, 생활비라도 마련하기 위해 노동부에 임금체불사업장 대출금 500만원을 신청해둔 상태다.

한 건설회사 직원 김모(32.수성구 시지동)씨는 입사 6년이 지났지만 회사부도로 결혼을 못하고 있다. 월급이 줄어 자취생활을 접고 고향인 구미에서 출퇴근을 하다가 기름값조차 어렵자 다시 대구에서 월세 30만원짜리 원룸생활을 시작했다. 푹 깎인 월급으로 생활이 어려워 신용카드로 다른 카드대출을 막는 최악의 버티기로 빚이 1천만원으로 불었다. 최근에는 회사의 법정관리 기각으로 퇴출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한 참 일할 나이지만 희망이 꺾여 삶의 의욕을 잃었다"며 "주택건설업체 직원들은 실직의 고통을 떠나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만큼 정부와 대구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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