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예외가 판치는 세상

입력 2000-10-26 14:24:00

조종사 파업과 의.약 분업을 둘러싼 의료계 사태는 닮은 꼴이 많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집단행동이라는 것이 그렇고 사회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계층의 행위보다 크다는 것도 유사점이다. 조종사나 의사들이 집단 파업이라는 극약처방을 해도 대체인력을 찾지 못하는 '부동의 위치그룹'이라는 점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만큼 역할의 중대성을 국민 전체가 수긍하는 대목이다. 전문직의 절대가치는 쟁점 사안에서 절대우위로도 이어진다. 예외(例外)도 이끌어 내는 협상능력은 사회전체의 설득력과는 관계없이 돋보인다.

이런 판단은 협상과정을 살펴보면 확연(確然)하게 드러난다. 우선 대한항공 사태다. 민항사상(民航史上) 처음 있는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은 하루만에 끝날만큼 사용자측의 황급한 수용으로 비쳐진다. 파업이전 17차례 협상이 보여 주듯이 노사간의 이견(異見)이나 다툼의 여지가 많았든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17여시간만에 노사간의 합의 도출은 회사측의 현실인정이다. 잦은 사고 등으로 인한 국제적인 이미지 실추, 결항으로 인한 비난 집중, 하루 손실액이 200여억원이라는 압박요인 등이 노조안의 대폭 수용이라는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이왕 들어 줄 것이라면 극한 상황이전의 조치가 더욱 설득력을 얻는 일이지만 노사관계의 협상과정은 간단하게 의견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문직 파업 도미노

조종사 파업은 일단락 됐지만 예측했듯이 갈등 요인은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파업사태의 여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관리.정비직 직원으로 구성된 대한항공 노조는 조종사 노조와 회사측이 합의한 단체협약이 일반 직원들의 권익을 침해할 정도로 조종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결정됐다고 주장한다. 협상에 관여한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어 노.노갈등으로 비화될 지경에 빠졌다. 조종사 임금의 대폭인상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라는 게 이들의 핵심주장이어서 노사간의 갈등도 예고된 상태다.

대한항공의 기존 노조와 조종사 노조의 갈등은 노동부에서 부추긴 꼴이다. 노동부는 조종사들이 지난해 8월부터 두차례 낸 노조설립신청서를 반려했으나 올해 5월 노조설립을 인정해 기존 노조의 반발을 불렀다. 기존 노조는 서울행정법원에 조종사 노조의 활동정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고 승소 판결이 나면 또 다른 파문이 일 가능성도 배제 못하게 돼 있다. 사실 한 회사에 두개 노조가 설립되는 것은 실정법상 적법한 절차는 아니다. 노동부의 '당시 기존 노조의 규약상 조종사들이 기존노조에 가입할 수 없었다'는 해명은 궁색하다. 실정법을 위반한 기형적인 노조라는 기존 노조의 반박이 설득력이 있다. 이런 상황전개의 배경에는 조종사들의 힘에 대한 배려로 비쳐지고 예외 인정 인상도 다분하다.

##국민 부담만 가중

정부와 여당이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사실상 임의분업의 추진은 의사들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교정이다. 분업대상서 제외까지 거론되는 이 사안은 우선 의약분업에 따른 국민 불편 특히 노인환자들의 불편을 덜어 준다는 의미에서는 현실적이기는 하다. 오랜 의료관행이나 노인환자의 의식 등을 감안했다면 '65세 이상 노인 임의분업'등은 미리 공론에 부칠 수 있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 그러나 약품의 오남용 방지라는 의약분업의 원래 취지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노인의 경우 가장 많은 약을 복용하는 계층이기 때문에 약의 오남용 위험에 가장 심하게 노출돼있다. 따라서 이번 정부 여당의 정책이 의약분업 대상서 제외로 변경되면 현실판단을 잘못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의약분업과 관련 어떤 예외가 인정될지 알 수가 없다. 어린이 환자를 의약분업 대상의 예외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예외범위 확대 움직임은 결국 준비안된 의약분업의 증명이기도 하지만 의사들의 입맛에도 맞는 것이다. 예외가 거듭되면 국민들의 호주머니만 턴다는 소리와 함께 집단 저항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사회전체의 형평성이나 균형감각, 제도시행에 문제가 있다면 고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국민 부담위에 어떤 계층을 배려할 소지가 있거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조치는 결국 이해당사자에게도 짐이 된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예외가 판을 치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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