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병은 자랑하라"고 했다. 그러나 수많은 병 가운데 항문질환만은 이 자랑의 대상이 되질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고 괴로워하면서도, 은밀한 곳이고 부끄러운 곳이란 생각에 병을 숨긴다.
그래서 통증이 너무 심해 정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어서야 병원을 찾는 것이 항문병이다. 이같은 잘못된 인식에는 "처가와 화장실은 멀리 있을수록 좋다"는 잘못된 관념도 한몫하고 있다.
환자와 상담할 때 괴로워하면서도 병원을 찾지 못했던 이유를 물어 보면 흔히 "창피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입은 음식물을 섭취하는 곳이고 항문은 배설을 담당하는 곳이다. 입이나 항문 모두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기관임을 생각하면 항문의 병이라고 굳이 숨길 일은 아니다.
더욱이 요즘은 환자들이 전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가며 진료하니, 이제 "부끄럽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만이 손해일 뿐이다.
병원을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항문 수술에 대한 공포심이다. 치질 수술을 하면 전부 재발한다더라, 나중에 항문 조리개에 이상이 생겨 변실금을 한다더라, 수술 후 통증이 너무 심하다더라 등등 근거없는 뜬소문이 병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치질로 진단돼도 수술해야 하는 경우는 20%에 불과하다. 또 수술 기술의 발달로 통증이 거의 없어졌으며, 항문 조리개 이상이나 항문 협착 등 부작용도 거의 없다.
환자를 만나다 보면, 병원에 가기 부끄럽다며 미련스레 민간요법에 의존하거나 돌팔이들에게 소중한 항문을 맡겼다가 변실금까지 닥쳐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항문의 복잡한 해부학적 구조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부식제 주사를 사용, 항문 괄약근에 손상을 줘 변실금이 생긴 경우이다.
모든 병이 그렇듯, 병을 정확히 이해하고 치료할 때에라야 가장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항문은 더 이상 부끄러워 하고 멀리할 대상이 아니다. 항문과 친하게 지내자.
박준희원장(시지 대구항문외과, www.hangmu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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