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부터 바꿉시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온다. "오늘 어디 할 차례냐. 이 ××들이 점심 먹고 눈알이 썩은 동태 눈깔처럼 흐리멍텅하네" 탕, 탕, 교탁이 울리고 수업 시작.
수업시간에 '바른말 고운말'을 쓰지 않는 건 극소수 교사의 사례일까.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의 생각은 다르다. 중·고교의 경우 학교에 한두 사람만 그런 교사가 있어도 반드시 1년은 '틀린말 험한말'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고생들은 성 모욕적인 이야기도 수업시간에 자주 듣는다고 하소연한다. 교사는 무심코 던지는 말이지만 요즘 학생들의 감성을 예전처럼 여기면 곤란하다. 교사도 학생들 앞에선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수업할 때만이라도 선생님이 높임말을 써주셨으면 해요. 개별적인 질문이야 편하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을 상대할 때 높임말은 당연한 예의 아닌가요. 아무 생각 없이 하시는 그 말씀에 깜짝 놀라거나 기분이 나쁠 때가 많다는 걸 알아주세요" 고교1학년 여고생의 이 말은 틀렸는가.
중학교 이모(38)교사는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학년이 바뀔 때가 가장 좋은 시기다. 높임말을 써 보면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동의했다.
물론 교사들은 반론이 더 많았다. 중학교 임모(42)교사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을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말투는 형식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높임말이 오히려 학생들과의 친근감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학부모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했다. "고교생 아들이 그래요. 수업시간에 고운 말 쓰는 선생님은 거의 별명이 없거나 좋은 쪽이라고. 반대로 듣기 험한 별명을 갖고 있는 선생님의 공통점은 수업시간에 말을 마구 하는 것이라고요. 아이들은 그만큼 정직하고 솔직한 것 아니겠어요"
김재경기자
교단일기
내 의식속에 선생님이 되겠다고, 그것도 꼭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고 뚜렷하게 생각한 때가 초등학교 4학년때인 것 같다. 그 날 친구와 심하게 싸워 그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일기를 쓰면서 나중에 선생님이 되었을 때 싸운 사람에게 이 일기를 읽어주리라 생각했었다. 그 일기장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나는 꿈을 이루었나 보다. 초등학교 교실 칠판 앞에서 분필을 잡고 있는 걸 보니.
옆 반에 강사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얼마 전에 명퇴를 하신 의욕이 넘쳐보이는 여선생님이다. 다소 소란해 보이고, 복도도 약간 너저분한 우리반을 며칠 지켜 보셨는가보다. 그리고, 정말 내가 느끼기에 진심어린 충고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반 복도를 몸소 쓸어주시며 "배선생, 교실에서 애들 가르치는 건 뭐 표도 안 나고 별 차이 없데이. 복도부터 깨끗이 쓸어놓고, 청소용구함도 말끔히 정리해 놓으면 안 좋나"하셨다. "예. 선생님 고맙습니다" 교실에 들어와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별 차이 없데이…'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운동장을 지나갈 때면 나한테 배운 아이들이 멀리서도 달려와서 인사를 한다. "배윤란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꼭 내 이름을 불러준다. 학교생활이 혼란스러울 때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주문같은 말이다.
도덕적이고 창조적인 민주시민.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있었고, 지금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 본관에 크게 씌어 있는 표어이다. 시골 대청마루에 걸린 낡은 흑백사진틀인가? 천만에. 올곧게 나는 도덕적이고 창조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였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했던가.
얘들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도덕적이고 창조적인 민주시민으로만 성장해다오. 가시 찔리는 장미와 약 쳤다고 따먹지 말라는 사루비아보다는, 뒹굴고 비비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지키는 노란 애기똥풀과 민들레로 교정이 가득 덮여 아이들이 그 풀꽃들을 닮아가면 좋겠다.-배윤란(대구서부초등학교 교사)
제1회 청소년 문화 한마당
21일 오후3시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기념공원. 수백명의 청소년들이 왁자지껄한 잔치판을 벌이고 있었다. 다음달 2일부터 5일까지 두류공원과 우방랜드에서 열리는 1회 대구 청소년 문화 한마당 프로그램 가운데 랩 경연대회 예선이 열린 것. 11팀이 참가한 이날 예선은 함께 온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지나는 어른들의 발길까지 붙잡았다.
특이한 것은 청소년들이 모이면 으레 보이는 이벤트 회사나 전문 MC들이 전혀 없다는 것. 행사 준비부터 운영, MC까지 모두 청소년들이 맡고 있었다. 이날 MC는 서경희(원화여고2년) 오아미(효성여중3년)양. 지난달 23일 공개 오디션을 통해 6대1이 넘는 경쟁을 뚫고 뽑힌 16명 가운데 두 사람이다.
오양은 "한달 가까이 준비했어요. 며칠 동안은 저녁마다 둘이서 호흡을 맞췄는데 실제 해 보니까 너무 떨리네요"라며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전문 MC 뺨치는 진행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서양은 "어른들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행사에 직접 참가하는 자체가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음달 2일 영예의 개막식 사회를 누가 보게 되느냐를 두고 다른 14명과 소리없는 경쟁을 벌인다고 했다.
청소년 문화 한마당은 대구 남부·동부 새교육시민모임과 청소년 문화센터 '우리세상' 전교조 대구지부, 민예총 대구지회, 참교육 학부모회 등이 올바른 청소년 문화를 만들고 정착시키기 위해 1년 가까운 준비 끝에 개최한 대구 최초의 청소년 축제.
공연, 전시, 경기, 토론, 참여, 대회 등 6개 마당으로 짜여진 한마당에 참가하는 학생은 무려 4천여명. 행사 펨플릿에 담긴 프로그램 종류를 읽기에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행사가 열린다.
모든 마당은 행사운영단이라는 이름의 학생모임에서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 운영해가고 있다. 10대들의 기획은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뛰어넘게 마련. 시화전만 해도 "티셔츠에 시를 적어 입고 다니며 보여주자" "중국집 철가방에 시를 쓰고 그 안에 사탕을 넣어 들고 다니며 읽게 하자"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홍보도 학생들 스스로 해나간다. 소속 학교마다 대회 참가 안내서를 돌리고 설명하고, 함께 손을 잡고 오는 것까지 그야말로 '밑바닥 홍보'다. 학생들의 입소문은 각종 홍보매체를 통하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빠른 탓에 참가인원이 너무 많아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행사기록도 학생들의 몫. 비디오촬영을 맡고 있는 김태인군은 고3이다.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라고 묻자 "제가 좋아 하는 일인데요"라며 태연스럽게 받아넘겼다. 영화과 진학을 꿈꾸는 그는 부모님의 지지를 업고 예선부터 각 마당을 다니며 캠코더로 촬영을 하고 있다.
학생들과 행사준비를 함께 하고 있는 '우리세상' 한민정(29·여) 사무국장은 "스스로 만들고 해나가는 일이 가장 즐겁다는 게 이번 한마당의 기본원칙"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반대는 거의 없다는 게 그의 얘기다. 어쩌다 "왜 이런 행사를 만들어 눈만 뜨면 축구공을 들고 연습하게 만드느냐"는 항의도 있지만 행사의 성격을 물은 뒤 참가방법을 묻거나 자녀와 함께 구경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손으로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문화 한마당. 그 뜨거운 열기가 조용한 가운데 대구 청소년들의 가슴을 데우고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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