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말 밝은 사회-음란전화

입력 2000-10-20 00:00:00

"음란전화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불쾌한 기분을 도저히 이해못할 거예요. 매일 밤 잠을 못잘 정도로 불안합니다"

주부 강모(49)씨는 전화 벨소리만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신원을 밝히지 않는 한 남자로부터 "만나자" "잠자리를 같이 하자"는 등의 음란전화에 6개월째 시달리고 있기 때문. 이씨는 발신번호 확인서비스를 신청했지만 공중전화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나 범인 추적에도 실패했다.

대학생 정모(20)양도 휴대전화 벨 소리만 들으면 식은 땀이 난다고 호소했다. 하루에도 두세차례씩 걸려오는 음란전화에 견디다못해 전화번호를 바꿨지만 아직도 악몽이 잊혀지지 않아 낮에도 전화받기가 겁날 정도라는 것.

음란전화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호소가 늘고 있다. 이씨나 정씨의 사례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예.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접수한 음란전화 피해 상담은 64건. 올들어서도 상반기 중 27건이 접수됐다. 상담소측은 음란전화 피해를 입고도 상담이나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한국통신에 따르면 발신번호 확인서비스 의뢰가 연간 10만여 건에 이르고 있으며, 이동전화의 경우에도 번호확인 신청건수가 매년 급증추세이다.

이처럼 전화를 통한 언어폭력이 기승을 부리자 정보통신부도 전화를 받기전에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를 내년 중 도입키로 했으며, 전자업체들도 발신자 전화번호표시 기능을 갖춘 단말기를 선보일 예정이다.문제는 이같은 전화폭력을 범죄가 아닌 단순한 장난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별다른 죄책감없이 음란전화를 하는 10대 청소년이나 성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 더욱이 피해여성들은 대응책을 몰라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지게 되고, 심할 경우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고 결국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않다. 강씨의 경우처럼 상대방이 공중전화를 이용할 경우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장진아(35) '대구여성의 전화' 상담부장은 "피해여성들 대부분이 대응방법을 몰라 고민하게 된다"며 "음란전화가 걸려올 경우 발신자 추적장치를 해뒀다는 등의 말로 일단 경고한뒤 경찰이나 상담기관에 도움을 요청할것"을 조언했다. 최태진(46)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음란전화를 상습적으로 걸 경우 성도착증으로 볼 수도 있다"며 "미국 등 선진국처럼 음란전화 가해자에게 인신구속 등 처벌과 함께 정신과 치료를 강제로 받도록 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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