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알바니아출신 망명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 'H서류'(박철화 옮김, 문학동네 펴냄)가 번역출간됐다.
자유와 인간성의 풍요를 수호하는 작품세계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카다레의 작품은 국내에 '부서진 사월'이 처음 소개된 이후 'H서류'가 두 번째. 이 소설은 1980년대 초 알바니아의 '넨토리'지에 발표되었을 때 알바니아 공산당국으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알바니아의 전설을 소재로한 이 작품은 알바니아에 거류하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든지 감시 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사소한 행적과 몸짓, 말 한마디까지 모조리 감시했던 공산정권의 스파이 활동, 전제적 정치 상황의 부조리를 소설에 빗대어 신랄하게 고발한 것이 이유였다.
이 작품은 대문자 H, 즉 호메로스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마지막 서사시의 땅, 북부 알바니아의 작은 마을을 찾은 두 아일랜드인 학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마을 사람들의 의심과 오해, 무지가 빚어내는 우스꽝스러운 비극을 참을 수 없는 유쾌한 희극으로 펼쳐보이는 풍자 코미디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의 자취를 연구하기 위해 녹음기를 들고 나타난 두 외국인 때문에 묘한 혼란에 휩싸인 알바니아 산악지방의 작은 시골마을 N군. 두 외국인을 스파이로 오해한 군수는 부하를 시켜 그들을 감시하게 한다. 그 사이 군수의 젊은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마을 사람들은 녹음기를 '악마의 기계'라고 두려워 하며, 수상쩍은 세르비아 수도사의 등장으로 두 외국인은 발칸반도 민족분쟁의 한가운데로 휘말려들게 된다는 줄거리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정치적 음모와 오해, 무지, 허영 따위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 운명의 비극적 아이러니다. 아내가 바람피우는 줄도 모르고 엉뚱한 데만 관심쏟는 군수, 엿듣기의 명수이자 빼어난 글재주가 아까운 부하 뒬 라수팡트, 보바리 부인을 꿈꾸는 군수아내의 몽상 등 장난스럽고 절묘한 웃음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작가는 전설과 신화적 요소들을 풍부하게 소설에 녹여내면서 속되고 덧없는 현실세계를 뛰어넘어 인류의 집단적 혼이 살아 숨쉬는 보편적이고도 영원한 세계를 'H서류'에서 그려내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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