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소리부터 질러라. 문제가 발생하면 목청 큰 사람이 무조건 이긴다. 질서를 생각하거나 문제의 쟁점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얼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우울하게도 한국 사회 전반에서 이 공식으로 풀지 못할 문제는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김소희(33)씨는 지난 주 월요일, 심한 열과 구토 증세를 보이는 아이를 업고 대구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당했다. 폐업중인 병원은 환자들로 북새통이었고, 몇 안 되는 의사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러나 거세게 항의하는 사람 앞엔 어김없이 의사가 붙어 있었다. 순서도 없고 병의 경중도 없었다. 거친 목소리로 항의하는 환자만이 고통을 덜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병원 응급실만의 풍경은 아니다. 민원인이 붐비는 관공서, 차가 씽씽 달리는 길바닥 등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큰 목소리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운전 경력 11년인 박정환(36.가명)씨는 교통사고 처리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대가(?)다. 얼마 전에도 자기잘못으로 추돌사고를 내고 한푼도 배상하지 않았다. 그의 비결은 다음아닌 큰 소리. 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잔뜩 인상부터 일그러뜨린다. 양팔을 걷어붙이고 전사처럼 저돌적인 표정으로 상대 운전자에게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른다. "운전 이 따위로 밖에 못해! 누구 죽이려고 환장했어?" 그에게 사고 경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일단 고함을 질러대면 접촉사고라는 쟁점은 사라지고 상대는 주눅들게 마련이다.
소리 질러대기는 개인과 개인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의사들의 집단폐업, 요란한 폭력 시위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소리를 질러대는 쪽만 문제가 있을까. 가톨릭대 심리학과 백용매 교수는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는 사회전반의 문화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귀머거리처럼 행동하면 상대는 늘 고함을 질러댈 수밖에 없다.
결국 큰 목소리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시도나 낮은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하는 생활태도는 스스로를 언어 폭력에 노출시키는 분별없는 행동인 셈이다. 선진국일수록 사람들의 말소리가 낮고 조용하며, 후진국일수록 시끌벅적하다는 사실을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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