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북.미합의 이후 북한의 과제

입력 2000-10-13 00:00:00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 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여 양국간의 관계 개선에 합의하였다. 그가 김정일의 친서를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앞으로 양국이 과거의 적대 관계를 청산할 것을 선언하였다. 더욱이 올해 내로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는 등 양국이 곧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번 합의가 대립과 반복의 북미관계를 전환시키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와 북한의 대외개방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북미 합의를 여러가지 시각에서 평가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이제 북한도 다른 아시아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방과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본다. 이번 북미 합의는 1979년 미중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이나 1991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평화협정 체결에 버금가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후, 그리고 베트남이 평화협정 체결 후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입이 시작되었다. 이번 북미 관계 개선이 북한의 외자 유치를 비롯한 대외 경제개방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1984년 북한이 합영법을 제정하고 1991년 나진.선봉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하여 외자 유치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유는 핵과 미사일 문제 등으로 인해 정치.군사적으로 불안한 나라에 외국 자본이 투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북미합의를 통해 이러한 장애물이 제거되어 매우 다행스럽다.

그런데 북한이 대외경제개방의 성과를 거두려면 이러한 대외적인 조치와 함께 농업분야의 개혁이 필요하다. 중국이 개방과 함께 집단농장인 인민공사를 점진적으로 해체하여 가족농이나 개인농으로 전환한 결과 농업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국가에 매여있던 노동력을 외국자본이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베트남도 중국처럼 1988년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가족농업체제로 전환하여 당시 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모하였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방 초기에 외국 자본이 이들 나라에 투자하는 동기는 저렴한 노동력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노동력이 집단농장이나 국영농장에 매여 있을 경우 외국 자본이 활용할 수가 없다. 더욱이 개방 초기에는 사회간접자본 시설 구축이나 제도 정비 등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므로 당장 개방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집단농장을 가족농으로 전환하여 농업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개방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이제 조명록 차수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방미 보고를 하면서 농업분야의 점진적인 개혁을 역설해야 한다. 북한이 오랫동안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홍수, 가뭄, 냉해 등 자연재해가 작용한 점이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개인적인 인센티브가 없는 집단농장체제에서 북한 주민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북한이 외부지원 없이 식략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대북 식량지원을 북한의 농업분야 개혁과 연계시켜 나가는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 북한이 농업 개혁을 추진하지 않는 경우 우리경제도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대북 식량 지원을 무작정 계속할 수는 없지 않는가?

김용호(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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