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국제 테러리즘에 대한 반대입장 공식천명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가로막아온 최대의 걸림돌을 제거함으로써 다음주 워싱턴에서 열릴 양국간 고위급 회담에서 최소한의 결실을 얻기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최고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인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역사적인 미국 방문을 불과 수일 앞두고 공동성명 형식을 빌려 북한측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배경에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문제의 해결이 없이는 양국간 현안에 관한 협상이 더이상 진전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해제 문제는 부분적으로 완화된 상태에 놓인 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 전면해제뿐만 아니라 미사일협상의 타결 가능성과도 얽혀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를 조건으로 경제제재 완화를 얻어냈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고 따라서 당장 심각한 경제난 해소를 위해 필요한 국제금융기구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지지가 필수적인데 테러문제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북한은 또 미국과의 미사일 협상에서 미사일 수출중단의 대가로 3년간 매년 최소 10억 달러씩을 보상해줄 것을 요구해 왔으나 미국은 "현금보상 절대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다른 간접적인 지원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현금보상을 대신한 간접지원 역시 테러지원국 해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테러문제의 해결은 미국과 북한 양측 모두에게 미사일을 비롯한 현안 협상에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것으로 분석된다.워싱턴의 한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앞서 조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계획이 발표될 당시 "고위급 회담의 북한측 관리가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수준으로 예상됐었으나 그 이상으로 격상된 것을 보면 김 위워장이 빈 손으로 보냈을 리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원치 않는 한 "초중량급인 조 부원장을 빈손으로 평양에 되돌려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최소한의 성과는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미 국무부가 6일 발표한 공동성명에 따르면 북한측은 지금까지 미국측이 요구해온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의 3대 조건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미국은 지금까지 제시해온 테러지원국 지정해제의 3대 조건은 △테러리즘에 대한 반대입장과 테러활동 불(不)지원 공약 △테러 관련 국제협약 가입 △일본 항공기 요도호 납치범인 적군파 게릴라 및 피랍 일본인 처리 등이다.
이 중 국제협약 문제는 북한이 이미 항공기내 테러, 항공기 불법탈취 방지, 항공기 폭파방지 및 정부요원 및 외교관 보호 등에 관한 4개 협약에 가입하고 있고 나머지 정치적 목적의 인질납치 방지, 핵물질 탈취 방지, 테러폭파 방지 및 국제테러 금융지원 방지 등에 관한 8개 협약의 서명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실제로 유엔 회원국들 중 12개의 테러관련 국제협약 모두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들도 상당수 있고 미국 또한 북한측에 협약 전부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커다란 장애라고는 할 수 없다.
이 점은 미-북한 공동성명에서 양측이 모든 유엔 회원국들에 12개의 유엔 협약전부에 서명.가입하도록 "권장"키로 했다고 밝힌 부분에서도 엿보인다.
이렇게 볼 때 문제는 북한측이 피신처를 제공하고 있는 요도호 납치범과 피랍일본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만이 남는다.
미국측은 이와 관련, 대한항공(KAL)기 폭파 등 한국에 대한 테러문제를 남북한사이 해결할 문제로 밀어놓고 있듯이 북한과 일본 양국이 해결토록 넘기든지 아니면 여태까지 "잘못한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오던 북한측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타결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제 북-미 고위급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선(先)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요구해오던 북한이 한발짝 물러서 미측의 조건들을 수용하는 동시에 거물급 인사를 워싱턴에 파견함으로써 양국 관계개선의 큰 흐름을 가로막고 있던 물꼬는 일단 터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는 9~12일 열릴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는 최소한 어느 정도의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조 부위원장이 "빈 손" 대신 어떠한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가느냐에 따라서는 양국의 관계개선을 향한 행보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