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도서정가제 논란

입력 2000-10-07 15:35:00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이 말도 이젠 '옛말'이다. 책이 휴가철인 여름에 더 많이 팔려 가을은 '독서의 계절'에서 밀려난지 이미 오래됐다. 출판계의 걱정은 이 가을을 맞아 더 커졌다. IMF 체제 이후 책 판매량이 엄청나게 준 데다 대형 서적 도매상 부도의 여파가 아직도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서정가제' 문제로 걱정이 하나 더 보태졌기 때문이다. 활자문화의 사양길은 시대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영상문화 시대의 다양하고 화려한 매체 환경에서 책은 딱딱하고 재미 없는 것으로 여겨져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정책 담당자들의 무철학.무소신은 문제다. 정부의 극단적인 실용주의적 시각에 의해 부정적인 측면이 더욱더 강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서정가제 의무화를 둘러싸고 또 다시 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도서 할인판매 행위를 처벌하는 방향으로 입법화하려 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에 어긋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공정위는 도서정가제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며 제정안에서 관련 조항을 삭제해 줄 것을 문화관광부에 요구했다. 반면 출판사들은 할인판매업체에 납품을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출판.서점업계와 온라인서점업계도 이 문제를 놓고 현격한 시각차를 보인다. 출판.서점업계는 과도한 할인경쟁은 결국 상업적인 출판물만 살아 남고 전문서적 등 양질의 책들은 사라져 지식문화산업의 황폐화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에 맞서 온라인서점업계는 소비자의 기본권리와 시장경제 원리를 침해하고 할인판매가 양서 출간 의욕을 꺾는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도서정가제 논란은 양면성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도서 할인판매가 인정되면 중.소형 서점과 출판사들이 무너지고, 유통질서가 무너져 출판산업의 후퇴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는 가격 경쟁을 없애 출판사와 서점의 도덕적 해이를 부를 우려가 있으며, 인터넷서점 등 전자거래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 출판계의 논란을 잠재울 근본적인 해결책이 이래저래 아쉽기만 한 현실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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